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쉰아홉 번째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57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다음 세상의 평화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나는 이승의 기쁨과 내세의 평화를 모두 택하고 싶습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단지 한 편의 시를 썼을 뿐이지만

그 운율은 완벽한 것임을,

마음 속으로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원문⟫

They say to me, “You must needs choose between the pleasures of this world and the peace of the next world.” And I say to them, “I have chosen both the delights of this world and the peace of the next . For I know in my heart that the Supreme Poet wrote but one poem, and it scans perfectly, and it also rhymes perfectly.”





새로 한 번역⟫

사람들은 내게 말합니다

“자네는 이승의 쾌락과 내세의 평화 가운데 선택해야만 하네”

그러면 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 나는 이승의 기쁨과 저승의 평화를 모두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가슴이

최고의 시인이 다만 한 편의 시를 썼고, 그 시는 완벽하게 운율을 맞추며

또한 완벽하게 운을 맞추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읽기글⟫

조이스 킬머의 “나무들”이란 시를 아시는지요.

나는 지브란도 위대한 시인이란 말로서 신을 지칭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 신은 하나의 완벽한 정원을 지었습니다.

또 계속해서 가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원을 갈라 두 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이 두 세계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한쪽에만 맞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거짓이 있을 것입니다.

물질만 좇는 것도, 물질을 마냥 부정하는 것도

똑같이 죄입니다-우리 영혼을 어둡게 한다는 면에서.


도리어, 현명한 이들은

물질에서 영혼을 발견하고,

영혼의 유익에 그것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쓸 줄도 알고 쓰지 않을 줄도 압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출간된 번역이 "택하고 싶습니다" 하고 '소망'으로서만 말한 것이 아쉽습니다.

시인은 이미 그것을 택했다고, 자기가 '행위'한 것을

미래의 소망이 아니라 '이미 실행'한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조각글의 이어지는 부분은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하여지지 않은 부분, 곧

그렇게 선택하는 게 가능하며,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점입니다.

하나인 것을 둘로 쪼개는 것은

이를 테면, 파괴요, 살해입니다.


당신은 그저 더 좋은 것을 선택하도록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선 안에 머물거나 벗어나 악해지거나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은 이루어진 적 없어 어디선가 언젠가는 어쩌면 얻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특별한 누군가가 해낼지도 모른다는 식의 '멀리하기'는 지독한 착각이자

우리를 악으로 이끄는 몽혼약(朦昏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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