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이백아흔네 번째날

살해당한 사람의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292

살해당한 사람의 명예는

그 자신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원문⟫

It is the honour of the murdered that he is not the murderer.





새로 한 번역⟫

살해당한 자의 명예는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읽기글∙1⟫

말발굽에 짓밟힌 꽃이

말발굽에 대하여 자신을 부끄러워 할 까닭이 없듯이.

그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명예만으로 족합니까?



……어쩌면 이 경계에서부터 사람들은 “너머의 다른 세상”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됐을 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상하는 게 아니라

저 명예를 그대로 느껴야만 합니다.

그러지 못한 이에게는

상상을 펼칠 수 있을지언정, 너머의 세계에 대한

그 어떤 감각도 자라날 수 없습니다.


신경을 되살리고 싶다면

너머에 대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버린 그 자리에만

너머는 넘어들어올 수 있습니다.





읽기글∙2⟫

살해당한 자의 명예를

그가 부활했다는 데서 찾는 것,

그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매

그가 바로 신이라는 것.


(신앙과 별도로 현실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 이것일 겁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죽기까지였고, 이후는 제자들의 가르침입니다.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과,

살해당했다는 것 자체에서 무언갈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런 그리스도교 신앙은 식물종교, 식물혼에 불과한 것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껴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껴안는가?

단지 그것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모든 부자연스러운 죽음에 저항할 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거나 죽는 건 사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별하지도 않아도 자연한 죽음들은

먹이가 되어 생명을 되먹입니다.

육체로 그렇고

정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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