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화려한
출판된 본문⟫ n.298
뿌리는 화려한 명성을 거부하는
한 떨기 꽃입니다.
원문⟫
A root is a flower that disdains fame.
새로 한 번역⟫
뿌리는 명성을 수치로 여기는 꽃입니다
읽기글⟫
아!
뿌리가 꽃이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한 생각 크게 일어나
내 속에도 다시 꽃이 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뿌리를 말라 가게 합니다.
뿌리를 먼저 살지우고
거기서부터 얻은 힘만큼 땅위로 솟구치기에는
나는 너무나 성급합니다.
나는 늘
나 자신의 진실보다 서둘러 뛰어 갑니다.
마치 몸과 떨어져 더 앞서 달려 가는 그림자처럼.
…그러고 보면 물질은 참 영적입니다. 물질은 더욱 참됩니다.
물질은 그런 분리를 허용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서는 이러한 일이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몸과 떨어져 따로 노는 그림자.
그렇다고 내가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습니다.
+
기독교 신학에는 신적 수동태(passivum divinum/divine passive voi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만 백 번 이상,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이백 번 이상 발견됩니다. 분명 수동태 문장인데 동사의 행위자[agent]를 감춘 것을 말합니다. 이때의 행위자는 하느님이요, 이 문장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이건 하느님이 하신 일이다.
천지창조나 그리스도의 무덤에서 들림(부활) 등 중요한 일은 틀림없이 신적 수동태(또는 신학적 수동태, theological passive)를 씁니다. 예례미아스라는 신학자는 아예 어느 말이 예수가 친히 한 것인가 걸러내는 도구로 신적 수동태를 활용하라고 제안합니다(많이 수용됐습니다).
저는 한 마디를 보탭니다. 신적수동태는 언제나 적극적수동태라고. 능동수동태(active passive)라고 말해 보겠습니다.
뿌리가 그러는 것이, 예수가 비유로 들려 준 이야기 속 제 할 일을 다하고 칭찬과 감사를 거절하며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는 모습. 오래된 전통이나 참된 종교가 가르친 순종과 순명은 이런 것입니다. 노예의 굴종이 아니라 신적 지위(divine state)를 얻는 길. 존엄을 드러내는 것. 누구도 나를 평가하거나 보상할 수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과 지체없고 흠없는 결행. 지행합일.
신에게 전지전능이 있다면 인간에게 지행합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공공선을 위해 부득이한 때가 아니라면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예수), 그게 선이라는 지각조차 없이(시몬느 베이유), 너무 커서 담을 데가 없는 사랑이 무한에 바쳐지듯(에디트 슈타인), 남들이 사랑한다는 자유를 싫어라하고 그보다 더 사랑하는 복종(만해 한용운)을 선택하듯이, 이성으로 비관하며 의지로 낙관(안토니오 그람시) 또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면서 저마다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자(체 게바라)는 다짐처럼 아무도 초대한 이 없어도 초대받아 갑니다. 그리고서 우리는 절간이나 교회당 어디서보다 강력하게 그 어떤 성소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당신은 초대한 이를 압니다. 어떤 말로도 채울 수 없게 생생히 압니다. 당신의 부득이(장자)를 축복합니다. 천복을 좇으세요(조셉 캠벨).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