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물거품 같이 읽기-삼백열아홉 번째날

그대는 축복의

by 이제월





출판된 본문⟫ n.317

그대는 축복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만약 그대가 그 꼭대기에 다다르게 된다면

그대는 단지 한 가지 소망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 산을 내려가 가장 깊은 골짜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 산을

축복의 산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원문⟫

You may have heard of the Blessed Mountain. It is the highest mountain in our world. Should you reach the summit you would have only one desire, and that to descend and be with those who dwell in the deepest valley.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Blessed Mountain.





새로 한 번역⟫

당신은 어쩌면 축복받은 산에 관해 들었을지 모릅니다

그건 우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요

당신이 그 정상에 다다른다면

당신은 딱 한 가지 갈망만 지닐 것입니다

내려가고자 하는 것, 그래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저들과 더불어 있는 것

그런 겁니다, 축복받은 산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읽기글⟫

어쩌면 한국어판 번역자는 칼릴의 마음을 가늠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릴이 마지막 해방을 선포한 것을 앞으로 당기고,

해방에 앞서 축복한 것을 맨 뒤로 미루었을 것입니다.

나는 축복 후 해방 선언과

해방을 선포한 뒤 축복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똑같은 걸까 생각해 봅니다.

이 모든 건 별 뜻 없는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미 ‘발행’된 책이 두 언어 사이 뚜렷한 독서경험의 차이, 경청한 자의 마음에 다른 자국을 남겼기에

이것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사소하기도 하고 중대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들은 다음’ ‘변하니까’요.


칼릴의 축복으로 족하려니와

저 또한 우정으로 몇 마디 보탭니다.

각자 따로 읽기할 것을 붙들어

같이 읽기하였으니

저 또한 의도를 심어 업을 쌓았으니

어떻게든 업보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읽는 업을 쌓았으니

저와 함께 업을 씻기를 청합니다.


그대여, 나의 형제여,


지금부터는 다리를 놓거나

그 징검돌이 되십시오.


이것이 맨 처음부터 같이 읽기의 목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창작순간부터 《모래·물거품》의 목적이었습니다.


섬인 당신이

바다를 건너


다른 섬들과

다른 땅들과

만나는 것.


만날 수 있도록

함께 이고 있는 하늘과 바람을 맛보여 준 것.


이 하늘을 날아가면

당신이 닿는 곳이

바로


또 다른 당신입니다.


그는 바로 나, 곧 당신의 형제랍니다.






"A little while, a moment of rest upon the wind, and another woman shall bear me."

“일순, 바람 위에 쉬어갈 때,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을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의 마지막 구절)

―설마 이것이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구의 이야기인 줄 아셨습니까?









*모래 물거품 같이읽기를 마쳤습니다. 저는 열흘 뒤 다른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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