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ll: A Tarot Story. 0과 1

시작에 관하여

by 이제월



#0과 1. 시작에 관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요지를 압축한 260자의 <반야심경>은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다고 설파합니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다섯 가지를 일컫는데,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은 어떤 것이 있는 다섯 가지 양식입니다. 색온은 감각대상이 될 수 있는 전부이고, 수온은 감각하는 전부요 느낌이며, 상온은 감각에 기초해 생각하고 표상하는 전부이고, 행온은 행하고 의지하는, 욕구하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식온은 그럼으로써 낳은 마음이요 의식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서로 돌고 돌아 낳고 멸합니다. 생멸하는 전부가 이 안에 있다고 합니다. 존재가 연기(緣起)하는 것이 실로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온’이란 말은 ‘쌓임’인데, 꽉 찬 것이 텅 비었다는 깨달음입니다. 흔히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구절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색만 공한 것이 아니라 오온이 모두 공합니다. 이 변하는 것, 윤회에 달리 보잘 것이 없다고 알아차리면, 인연생기(因緣生起)하는 이치, 직간접으로 인과를 이루는 것, 다시 말해 이에 의하여 저가 일어서고 저에 의하여 이가 저무는 것을 알아차리면 이 의존을 떨쳐 인연의 굴레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벗어남을 해탈이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온이 유위법이라면 공은 무위법이니 오온을 공하다고 해 버리면 이제 고요는 깊은 절간에 있는 게 아니라 시장통의 소란 속에 있게 됩니다. 유치한 아이들 놀이에서 깨달음이 번득이고 저잣거리의 욕망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들을 것입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예수의 수난 가운데 깊고 깊은 위로가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정반대의 시작에서 이미 끝을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말은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이-저’를 좀체 허용하지 않습니다. 말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어도 낱낱의 낱말은 구분된 뜻으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표현이란 게 그렇지요.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는 스물두 장으로 구성됩니다. 현대 타로는 가끔 여기에 기원[Genensis]이라든가 무한[Infinity], 무한의 탐색자[The Seeker] 같은 카드를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건 정말 그 카드의 개성이라고 생각되며 여전히 ‘타로'라고 할 때 메이저 아르카나는 스물두 장으로 구성되는 시스템입니다.

여기 타로 카드의 메이저 시스템을 일별하는 표를 첨부합니다.

타로 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에 대한 가장 흔한 설명이지만 매력적인 것은 타로 카드가 성장과 변용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주 ‘바보의 여행’으로 비유됩니다. 전자는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는 각 단계, 취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 주는 것이 메이저 아르카나 각각이라는 설명이고, 후자는 한 사람이 살아가며 또는 성장하며 만나게 되는 모델들, 유형들이 메이저 아르카나 한 장 한 장으로 표현된다는 이야깁니다. 저는 두 설명을 굳이 따로 구분하고 양자택일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설명은 메이저 아르카나 시스템이 3층 구조를 이룬다는 것인데, 이 설명에서는 0번 The Fool 아르카나를 특별하게 다룹니다. 이것은 비어 있는 자아, 그 어느 누구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1번부터 21번까지 스물한 장이 남습니다. 7장씩 3층을 이루지요. 첫 번째 층은 의식 세계를, 두 번째 층은 무의식 세계를, 세 번째 층은 초의식 세계를 다룬다는 설명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은 개인성 안에 갇혀 있지만, 세 번째 층은 초개인적입니다. 그리고 낮은 번호부터 높은 번호로 우리는 성장 또는 진화합니다. 아울러 각 층의 같은 자리에 있는 카드들은 서로 특별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이야기 중간에 다시 등장하곤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삼층 구조를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카발라와 연결지어서도 설명하는데, 열 개의 세피로트를 마이너 아르카나의 핍카드에 대입하기는 쉬우나(10:10), 메이저 아르카나와는 대응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입니다(22:10). 그렇지만 생명나무의 각 세피라를 전해내려오는 도상대로 배치하면 열 개의 세피라를 잇는 길이 딱 스물두 개 나옵니다. 그 경로에 대입하면 22:22로 1:1 대응합니다. 그러면 또 타로 카드 각각이 외부 시스템을 따라 설명 가능합니다.

물론 점성학을 통한 설명도 많이 쓰입니다. 행성과 별자리를 대입하면 타로 카드의 해석이 풍성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별히 시기를 특정할 때에 더 세분할 수 있습니다. 룬 문자나 히브리 문자를 매기는 것도 이들 문자가 진작부터 신비주의적으로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해석을 도출시켜 줍니다.

그렇지만 우선은 다른 신비주의의 설명 말고 타로 자체의 내적 관련에 따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 이해는, 자구 그대로 구속하기 위한 게 아니어서 매뉴얼조차 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당신에게 밧줄을 준다면 밧줄을 어떻게 쓸지는 당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밧줄은 여전히 밧줄이지만 그것은 매번 전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타로 카드는 당신이 섬길 무엇이 아니라 부릴 무엇이니까요. 도구라는 점, 기계라는 점, 장치라는 점을 잠깐이라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미리 드리는 아주 중요한 조언은,


첫째, 매뉴얼은 달달 외워라.

둘째, 다 외운 다음에는 싹 다 잊어라.


기억하기보다 잊기가 더 어렵기는 합니다. 그래도 하시기 바랍니다. 외우는 것은 그림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줄이고 습관대로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새것이 옛것을 그냥 대체해서는 자리 바꾸는 의자놀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제 카드의 그림과 뜻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자신을 믿고, 그 순간순간 깨어 관찰하고 영감을 받아들이며 마음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것들을, 직관에 따라 풀이하십시오. 얻고, 버리라는 것입니다. 애쓰고 그 다음에는 즐기라는 것입니다.




#시작은 1인가?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신비가 중 한 명인 프란츠 바르돈은 타로카드를 신비수행의 훌륭한 지침서로 보고, 그것이 신비세계를 읽고, 자신을 신비체로 수행하는 쓰기의 안내서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타로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한 장이 메이저 아르카나의 <마법사> 카드라고 여겼으며, 여기에 타로 전체가 담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그 한 장의 타로, 마법사 카드를 그려 자신의 저서 [[헤르메스학 입문]]의 서두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처럼 1번 메이저 아르카나 <마법사>를 타로의 시작, 원천 나아가 전부로 보는 견해가 오래도록 존재해 왔지만, 마찬가지로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주목받은 또 한 장의 아르카나가 <바보>입니다. 지금이야 출판된 타로 카드가 대부분 장마다 이름과 번호를 매겨 달고 있지만, 초기 타로 카드는 번호를 매기지도 않았고, 이름을 적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사용자들이 그림을 보고 무언지 알았고, 순서도 거의 동일하게 알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의 타로 카드는 명문가의 혼례를 기념하거나 귀족과 부자의 호사스런 취미였고, 실제로 한 장 한 장 화가가 직접 그린 고급스럽고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그걸 놀이에도 쓰고 그러다가 점술에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타로의 기원을 고대 이집트가 유태 카발리즘에서 찾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런 시도 가운데 어느 것도 정확하게 입증된 적은 없습니다. 타로 카드의 신비스런 기원은 기원을 알 수 없는 데 붙여진 부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중세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특히, ‘황금새벽회’를 통해서 타로 카드는 기존의 각종 신비주의와 점술들을 종합한 것으로서 해석되었고, 해석에 따라 재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름도 번호도 갖지 않은 타로의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최초로 인쇄, 출판하여 대량으로 퍼졌고, 그래서 덱 전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타로 카드인 ‘마르세유 타로’에서 <바보> 카드는 이름만 있고, 번호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안 쓴 게 아니라 번호를 적을 난을 만들어 두고 공란으로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 카드를 무기(無記) 카드라고도 부릅니다. 아울러 메이저 아르카나 13번은 통상 <죽음>으로 알려졌지만, 마르세유 타로에서는 이름을 적는 난을 공란으로 남겨 무명(無名) 카드로 불립니다. 웨이트 이전 클래식 타로들이 다 그렇듯 마르세유 덱에서도 마이너 아르카나들은 각 수트의 상징을 세어 보면 알 수 있을 뿐 숫자를 적어 핍 카드가 몇 번째인지를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처음’은 ‘하나’일까요, 아니면 ‘영’일까요?


저는 둘 모두 처음이라고 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다만 하나는 보이는 처음, 처음일 수밖에 없는 처음이고(1. 마법사), 하나는 보이지 않는 처음, 그것이 꼭 처음이어야 한 것은 아니지만 불현듯 처음이 된 것(0. 바보)이라고 생각합니다. 1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들은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해석에서 세계를 인과율로 파악하려는 시도, 정합적 이해가 돋보입니다. 0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들은 세계가 불가해하며 예측불허한 것이라는 관점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0과 1의 다툼, 혼돈과 질서의 뒤엉킴, 우연과 필연의 겨룸터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어떤 것은 수고의 결과이고, 어떤 것은 아무 탓 없이 찾아오는 행운과 불운 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맞이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데카르트로부터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 혁명과 산업화 문명을 거치면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 것처럼 굴었지만, 어쩌면 그 발견한 원리, 대전제가 양자 세계의 불가해한 모습인 지금. 이 현대의 눈으로 본다면 세계는 인과적으로 해석하거나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 로티 같은 학자의 명명처럼 ‘우연성’과 ‘아이러니’를 통해 바라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 그는 한 마디를 더 붙였지요. ‘연대성’.

어쩌면 이 마지막 한 마디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미래를 아는’ 대신 ‘미래를 만드는’ 데로 주의를 돌려야 할 테니까요.


타로 카드는 당신이 궁금한 것을 ‘아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유사한 도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류 즉, 당신이 가진 강렬한 염원이 반영된 듯한 패가 나오고, 답변과 해석에 끌리는 오류까지 생각한다면 이런 방식의 앎은 언제나 위험천만합니다.

그렇지만 타로 카드를 당신이 맞닥뜨리는 것을 ‘해결하는’ 행위의 도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가 같이 움직이듯이 의식과 무의식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연결된다면, 더욱이 프로이트와 달리 융이 가진 전망처럼 무의식이 오롯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이기도 하다면, 이 집단무의식이 하나의 세계처럼 펼쳐질 때 그 작은 전조가, 타로라는 확성기를 통해 증폭되고, 희미한 신호를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언어는 수십 만 개의 단어가 아니라 고작 78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이것을 최대한 폭넓게, 그러면서도 선택해서 하나를 짚어 해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타로는 누가 뽑아도 맞게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것은 마치 개개인의 꿈의 해석이 결국 고유한 자기 상징과 체계의 이해에 기반함으로써 꿈꾼 사람 자신의 직시와 통찰 없이는 도달불능점으로 남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어디까지는 안내받겠지만, 거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듣는’ 일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타로에서 0과 1 가운데 무엇이 시작인가 하는 이야기는 ‘우연성’과 ‘필연성’ 가운데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저마다의 입장, 언제까지고 증명할 순 없고, 다만 믿고 선택할 뿐인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필연성을 보여 준다고 할 마법사 카드에는 타로가 기반한 사원소설의 네 개 원소의 상징물이 모두 등장하고, 자신만만한 표정, 어떤 위험도 미처 예상하지 않는 사람 또는 소년, 또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준비성, 계획성, 갖춤을 나타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이 갖는 우선성, 이니셔티브initiative입니다. 이 첫째감은 많은 문제를 돌파할 원첝적 에너지를 갖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니셔티브를 쥐느냐 쥐지 못하느냐는 자기 자신의 의지에 관련됩니다. 그래서 많은 마법사 카드에서, 특히 전통을 따르는 덱에서의 마법사 카드는 네 개의 상징 중 오직 불의 상징만을 손에 쥐고, 또한 자주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팔을 곧게 펴 올리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지가 빛을 비춘다는 것.

타로 카드를 해석하고 이용하려는 많은 이들이 주지주의의 관점에서 마치 과학처럼 타로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사용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진짜 마법사’로 불린 대가들조차 그랬습니다. 글쎄요? 저는 타로 카드를 주의주의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 알려 주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암시와 혼란스러운 지시들로 가득한 말들을 건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이 굳거나 멈춰선 곳, 맺힌 자리를 풀어 주고 통하게 합니다. 행동하게 합니다. 타로는 그 실행력을 주는 조언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다음에 더 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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