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ll: A Tarot Story. 0과 1(2)

시작에 관하여(2)

by 이제월




# 아이처럼. 0번에 대한 이해


타로 카드 메이저 아르카나 중 0번 <The Fool>은 흔히 ‘바보’ 또는 ‘광대’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바보가 그냥 바보가 아니고, 광대도 그냥 광대가 아닙니다. 이들은 최하층의 천민이자 신분과 상관없이 천대받는 존재를 일컫는 이름이며, 신분이 폐지된 시대에도 다른 이의 평판과 호오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존재들입니다. 특히 타로 생성기 유럽 사회에서 광대, Fool은 주로 궁정에 소속된 인물로 바보처럼 굴지만 왕과 측근들을 웃기는 사람이며, 놀랍게도 온갖 직언을 올리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축제 때에는 축제의 바보를 뽑아 세우는데(또는 축제의 왕을 뽑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외치는 말, 구호 같은 것들은 민중의 심경과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곤 하였습니다. 왕의 전속 광대의 경우, 공식적으로 가장 낮은 자리 인물이지만 가장 높은 자리의 왕과 붙어 지내는 관계로 사람들은 일부러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광대의 환심을 사거나 겁박하여 자기 뜻을 우회해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강자와 강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광대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광대의 말이 불쾌할 때라도 함부로 광대를 내치거나 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광대의 말을 듣고 웃어 버리는 것이 왕의 주요한 자질, 그가 감인지 감이 아닌지 식별하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저게 무슨 왕이야’ ‘왕이 뭐 저따위야’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불쾌하거나 불편해도 참아야 했을 것입니다. 또는 그 ‘다른 쪽 생각’을 듣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긴 왕들도 물론 여럿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바보는 그저 물색 없는 사람,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잡스의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하연설 속 “Stay hungry, stay foolish”는 바보 멍청이로 살라는 말이 아니라, 다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소리에 열려, 맹점 없이 바라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foolish는 어리석으면서도 fresh, 신선함에 가깝게 다가서 있는 것입니다. 바보는 모든 것에 민감하게 깨어 있고, 결코 어느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보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아이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그 첫 비침에 각각의 사물과 풍경, 그것들 전체가 어떻게 새겨지는지는 감히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부모들이 아기 때는 다들 자기 자녀가 천재인 줄 착각하는. 그것은 착각이 아니고, 그 뒤에 우리의 지도와 동반이 틀렸을 뿐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하고, 분명 한때 천재였습니다. 천재가 아니고서야 사전도 문법책도 족집게 과외도 없이 무수한 어휘와 문법체계를 술술 외웠을리 있으며, 그 미묘한 느낌의 차이들을 감지하는 재주를 영영 획득했을 리 만무합니다. 다만 그 천재성은 어느 순간 닫힙니다. 우리는 더는 새롭게 받아들이지 않고, 새것조차 이미 받아들인 어느 것의 닮은 꼴로, 비슷비슷한 걸로 취급하여 퉁쳐서 받아들입니다. 벌써 어린아이들에게 연필을 쥐어 주고 꽃이나 풀잎을 그리라고 하면, 한 번 슥 보고는 나란히 난 잎을 어긋나게 그리고,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인 것을 매끈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주 빨리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사는 법을 배워 버립니다. 배운다기보다 거기에 미끄덩 빠져 버립니다. 빠지지 않는 법, 이 허위에 빠지지 않는 법은 ‘사실에 풍덩 빠지기’입니다. 제가 만난 미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홉 번 보고 한 번 그려라.” 저도 점점 그 말을 따라 했고, 이 마술 같은 말 뒤에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들은 경이로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신선한 눈은 오래 보존됐고, 사실을 보는 그들의 별날 것 없는 재주, 그저 시늉하는 대신 ‘정말 보는 것’은 이들이 맺는 인간관계가 일하는 태도에 전부 스며들어서 어느덧 인정받는 사람, 환영받는 사람, 이해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아이들이 다른 이들이 기꺼이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는 데에 그들이 좀 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사실이 자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들이 타인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며,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아닙니다. 어쩌다 우연히 자기의 삐딱한 것들이 마주쳐 ‘사랑일까?’ 하고 끌리는 거 말고, 그의 앞에서 내가 더욱 나이기에 열병 같은 사랑 말고, 공기처럼 숨 쉬는 사랑을 그들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보는 그래서 모든 이들을 진실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이 순수는 감탄할 만하고, 매력 넘치기도 하지만 증오스럽고, 나를 자기 혐오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순수한 것을 향해 그렇듯이, 예를 들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거나 데바닷타가 제자이며 친척인데 스승인 부처를 세 차례나 살해하려 했다거나, 너무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을 굳이 괴롭히고, 아이를 괜히 성가시게 하고,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자꾸만 의심하고 시험하며 ‘실은 나쁜 사람’임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심리가 별다르지 않을 터입니다.


바보는 또 진짜 바보이기도 합니다. 무절제하고 즉흥적이고 무방비, 무대책, 무계획으로 정말로 자신이나 주위를, 어쩌면 전부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할 겁니다. 그가 자유분방하고 늘 신선한 채이냐 아니면 일촉즉발의 시한폭탄이느냐는 그가 주위의 소리에, 말들에 감각과 정신을 열어 두었느냐, 닫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바보는 아이처럼 통상의 선악 분별 이전을 살아갑니다. 그는 아무런 악의 없이 우리를 해치기도 하고, 특별한 선의 없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도 합니다. 그는 거래하는 대신 지나쳐 갈 뿐입니다. 이 규정되지 않은 존재, 아페이론[a peiron], 무정형(無定形)을 어찌할까요? 통치하는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높은 궁전이나 성당 대신에 도시의 중심에 놓인 텅 빈 광장.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민주주의는 최선을 보장하는 제도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 절대적 배척, 잔인한 배제를 하는 걸 막는 장치로서 탁월합니다. 마이너 아르카나의 0번은 우리에게 수용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은 현실이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어쨌든 나머지 전부는 이 근원적 무정형이 어떤 조건, 제한 가운데 있는 것일 따름이니 말입니다.



#아이처럼. 1번에 대한 이해


또 다른 한 아이가 있습니다. 0번이 모든 관계 이전의 백지 같은 아이라면, 1번은 축복받은 아이, 가족의 사랑과 온갖 선물로 둘러싸인 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도안은 하늘과 땅 사이에 당당하게 선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탁자 위에 또는 여러 다른 방식으로 타로 체계에서 세상 전부를 뜻하는, 4개의 원소[element]들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그중 한 가지, 지팡이를 들고 팔을 뻗어 올림으로써 자기 의지를 실행할 것을 예고합니다. 그는 뜻을 품었고, 그 뜻을 실행할 자원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1번이 시작의 카드인 까닭은 또 있습니다. 그는 아이일 수도 있지만 가장 오래된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다 완수한 사람일 수도 있고 수습 기간을 거치는지도 모릅니다.


마법사magician은 마법magic을 행하는 자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마법magic은 마기magi(복수형은 마구스magus)가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원리인지 마기라는 존재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그게 곧 마법이고, 마법사란 마기가 하는 일을 따라 배워, 마기처럼 전부가 아니지만, 그 일부를 의식적으로 실현해 내는 존재입니다. 즉, 두 마법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가 마법사인 종족과 행위에 의해 마법사인 직종. magician은 magic을 부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magic은 magi가 하는 일입니다. 마기가 하는 건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다 마법입니다. 임제 선사가 “기적이란 땅 위를 걷는 일이다”라고 한 말이 여기에 맞춤할 것입니다.

전자는 타고나서 아이 같은 순수함 속에서도 마법이 흘러 넘치겠지만, 후자는 배워 익힌 것이니 다 큰 어른, 그것도 원숙한 어른으로서 마법을 재현하고 편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둘이 반드시 다르지는 않습니다. 둘이 하는 일은 공통되게 무無에서 유有를 길어내고, 공空을 색色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들에게서 세계가 비롯하니 둘 다 시작하는 자이며, 그것은 앞선 전제가 없으니 의지로 말미암고, 온전하게 이니셔티브를 지닙니다.


타로를 하면서 마법사 카드를 뽑는 이들은 대개 재간둥이입니다. 이들은 어떤 일이든 금방 배우고 쉽게 시작합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참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일찌감치 주변의 기대를 받고 거기 길들어 진정한 자신을 찾는 대신 주변의 기대에만 맞추고, 실패할 우려가 있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자기 재능과 결에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마법사, 근원적인 세계의 창조자, 세계의 창조 원리를 배우고 본따 재현하는 자로서 말고, 진짜 처음 하는 자로서의 마법사인 <마기>는 시작하는 힘, 주도하는 권리, 방향을 부여하는 권능을 가졌습니다. 이는 곧 무엇이 선(善, Bonus)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마법사 <매지션>은 마기가 한 것을 따라함으로써만 어떤 것이 실재하고 작동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마기가 한 일은 생명을 주고, 이를 거스르면 죽음이 오겠지요. 마법사는 선을 행하는 존재인데, 한쪽은 선을 일으켰고 한쪽은 선을 따라갑니다. 어느 쪽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마법사이든 선을 일으키고 계속해서 일으킵니다. <선을 결정하는 것> 이게 마법사의 일입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독일어에서 중성을 가리키는 관사 ‘다스’das가 아이를 가리키는 ‘킨트’kind 앞에 붙습니다. 독일어에서 어린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겁니다. 마법사 아르카나는 남성이나 여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보다 원인간(源人間)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을 가리킵니다. 인간의 기도가 곧장 닿는 신은 아인-아인 소프-아인 소프 아우르가 아닙니다. 그 전에 먼저 아담 카드몬입니다. 모든 올바른 기도는 인간, 자기 자신에게 바쳐집니다. 그가 이 세계와 직접성을 가지며 이 세계에 책임을 집니다. 동학에서 인내천(人乃天)이라 말함, 제사상을 거꾸로 놓아 자신에게 바침은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시작합니다. 기원함으로써, 의지함으로써, 무엇이 선인지를 결정함으로써.

온갖 재주나 다른 축복과 지지, 지식과 재능, 힘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하기로 함으로써. 이제부터 당신은 시작한 일을 끝내야 합니다. 책임져야 합니다. 한 사람으로서만 아니라 우리 전체가 한 몸인 채로.

이것이 우리의 존엄입니다. 하였고, 할 수 있고, 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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