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ll: A Tarot Story. 6과 9

시험과 준비

by 이제월



#. The Lovers: 연인이 아니라 연인-들

타로 카드 메이저 시스템에서 여섯 번째 아르카나는 <연인들>입니다. ‘연인’과 ‘연인들’은 매우 다릅니다. 하나는 나 또는 누군가를 중심으로 삼고 그와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된 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또는 둘이나 그 이상. 반면 다른 하나, ‘연인들’은 둘의 관계 자체를 문제 삼고, 둘 ‘사이’에 중심이 자리합니다. 그래서 ‘연인’ 카드를 뽑아든 이가 자기 상상 속의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대부분 틀립니다. 그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환상 속의 그대>를 ‘현실 속의 그대’로 바꾸라고 요청하는 메시지로 알아듣는 편이 낫습니다. 설령 이 카드가 현실의 연애를 직접 가리킬 때라도 그렇습니다. 사랑은 허깨비가 하는 것도, 양자의 가면놀이도 아닙니다. 사랑은 둘 사이 진실의 ‘시험’입니다.


#Ⅳ와 Ⅴ

Ⅵ. The Lover, 연인들 아르카나를 잘 이해하려면, Ⅳ. The Emperoro와 Ⅴ. The Hierophant, Ⅳ. The Emperor와 Ⅵ. The Lovers, Ⅴ. The Hierophant와 Ⅵ. The Lovers, Ⅵ. The Lover와 Ⅸ. The Hermit 그리고 Ⅶ. The Chariot 사이의 관계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맨 앞 세 장(Ⅰ. 마법사, Ⅱ. 고위 여사제, Ⅲ. 여제)이 갖는 원형적 특질 이후에 이어지는 장들은 삶의 신비, 아르카나arcana 들이 특수하게, 어떤 뜻으로는 전체를 대변하는 대신 부분적 성질을 띠고 일정한 극(極)을 형성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극성들 가운데 가장 강한 극성은 지배하는 극성이고, 직접 지배자로서의 황제와 간접 지배자로서의 교황이 연속해서 등장합니다. 바로 이어서 이 카드, <연인들>이 등장하고, 다음 카드는 메이저 아르카나의 삼층 구조에서 첫째 층의 마지막 장 <전차>가 뒤따릅니다. 이어서 둘째 층의 시작, 이니셔티브intitiative를 쥐는 <힘>이 나서는데* 이 강력하고 힘을 발산하는 카드 직후에 Ⅸ. The Hermit, <은둔자>가 따릅니다.

메이저 아르카나의 순번으로 1-2-3이 단일성과 신성-이원성과 알아차림-완전성과 세계의 성립을 알린다면, 이후 0번을 제외한 18장의 아르카나는 이 세계의 여러 모습을, 세계를 구성하고 이행하는 극성들을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 4-5-6-9번, 그리고 7번은 특별한 관계를 맺습니다.


먼저 Ⅳ. The Emperoro, 황제와 Ⅴ. The Hierophant, 교황은 ‘질서’라는 열쇠말로 엮여 있습니다. 이는 세계에 간섭, 참여하는 두 방식을 보여 줍니다. 둘은 상호보완적이면서 대립하기도 하는 성질을 띱니다. 둘 사이는 일종의 제로섬 관계에 있어서 둘 다 전부를 차지하려고 들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맞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나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으로 예를 들자면, 아이의 ‘본성'을 믿고 지지 또는 냉소할 거냐, ‘양육’ 태도와 방식이 결정적이라고 볼 거냐 같은 건데, 대부분의 부모는 남들 보기에는 어떻든 둘이 양쪽으로 진영을 갈라 맞서기 일쑤입니다. 더 허용적이거나 더 엄히 다루는 배경은 부모 개인의 기질이나 신념보다도 하나의 세계를 다루는 기본 태도가 이 두 방식이기 때문일 겁니다.


#Ⅳ와 Ⅵ

Ⅳ. The Emperor, 황제와 Ⅵ. The Lovers, 연인들은 ‘권한’ 또는 ‘권리'라는 열쇠말로 엮여 있습니다. <황제>가 당연한 권리와 권한을 행사할 때 그는 동시에 같은 무게의 의무도 집니다. 그런데 <연인들> 또한 서로에게 그렇습니다. 둘 다 ‘배타적’으로 관계 맺고, 그것은 ‘소유’와 비슷한, 그러나 혼동되면 곤란한 ‘주권’ 관계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칼릴 지브란의 말을 빌어 먼저 강조하거니와 “둘은 서로에게 상대가 허락한 것보다 더 큰 권리를 갖지 않습니다’. 아무튼 황제와 연인은 서로에 대해, 또는 제삼자에게 상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말할 수 있고, 말하여질 수 있다는 것은 둘 사이에 정보와 사실이 교환되고 어느 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고 해석해도 좋습니다. 서로의 존재에 참여하고 서로가 서로를 성립시키는 것입니다.



#Ⅴ와 Ⅵ

Ⅴ. The Hierophant, 고위 사제/교황과 Ⅵ. The Lovers, 연인들이 맺는 관계는 또 좀 다릅니다. <교황>과 <연인들>은 모두 진실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 진실은 서로에 대해 깊이 알고 전적으로 수용할 때에도 언제든 타자성을 숙명으로 안고 있습니다. 교황이 신과 신성에 아무리 깊이 참여해도 그가 신을 타자로서 만나고 있는 한, 또는 온전히 하나라고 느낀다 해도 신에 대한 그의 앎과 참여는 전부 주관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연인들도 서로에게 자신을 아무리 온전히 내어 주어도, 또 거침없이 상대를 받아들여도 여전히 상대는 타자이고, 그래서 둘 사이의 앎과 함도 전부 주관적입니다. 교황도 연인들도 진실을 갖고 있지만 진실은 주관적입니다. 그렇다고 타자성을 해소하려고 들면 둘은 사라지고 ‘관계’도 함께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이들로서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교황도 연인들도 상대가 존재하기를 바라 너와 나 둘로 남습니다. 서로를 삼키되, 서로를 끝내 남겨 둔다는 이 역설이 사랑의 역설입니다.


Ⅴ. The Hierophant, 고위사제/교황과 Ⅸ. The Hermit, 은둔자는 또 다릅니다. 둘을 나란히 두고 보면 <교황> 카드의 삼중성이 잘 드러납니다. 우선 교황은 황제와 권력을 공유합니다. 그는 권력자로 상대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은둔자>와는 상대에 대한 숭배 그리고 헌신, 갈망을 공유합니다. 이때 둘은 모두 ‘진리’를 추구합니다.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둘은 기꺼이 타자로 남고, 자신을 소모해 상대화할 수 없는 절대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교황과 은둔자 사이에 차이점도 있지만, 그건 잠시 후 더 이야기하고, 절대 진리를 향한 헌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인들>과는 주관적 진실이라는 가변적이고, 더 구체적인 욕망과 실행을 안고 있습니다. <고위 여사제>가 진실을 추구하되 그것을 배우고 깨닫되 범접하지 않고 보호하는 것과 달리 <교황>은 이를 끊임없이 변용하여 현실에 적용합니다. 거기에 왜곡과 굴절이 따르더라도 그만하면 맞다는 것이 교황의 현실 우선 태도입니다.


# Ⅵ과 Ⅸ

Ⅵ. The Lover, 연인들과 Ⅸ. The Hermit, 은둔자가 맺는 관계. 비로소 이것이 등장합니다. 사실 연인들은 은둔자와 상극입니다. 한쪽은 함께 있고자 하고, 한쪽은 홀로 있고자 하니 닮았달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둘은 누구보다 닮았습니다. 4-5-6의 연장은 질서와 권리, 진실이라는 세 개의 열쇠말로 연결되어 어디까지는 서로를 완성하고 거기를 지나치면 서로를 옥죄고 갉아먹습니다. 오케아노스처럼 제 꼬리를 무는 순환을 깨는 것은 타자의 절대성입니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이지만 그래서 사라지기도 하고, 덧없어지기도 하는 현실하는 상대 대신에 영원 속에서 상대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나보다 크고, 나를 포함해서 마치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더 큰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독은 사라지고, 한계도 사라집니다. <은둔자>는 4-5-6번의 지배-조언자 관계가 양자를 겸하는 연인 관계로도 해소하지 못하는 궁극적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택한 ‘자원한 고독’입니다. 자원하는 동안 이 고독은 절대 고독에 수렴하고, 절대 고독의 끝에서 절대 고독을 부정하며 진리를 발견할 것입니다. 진리를 발견한다면 그는 고독을 자원한 같은 이유로 고독을 멈출 것입니다. 말하자면 죽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기, 은둔자의 것만이 아닙니다. 사랑함의 가치를 재는 모든 행위는 사랑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이어서 오직 계속하여 사랑함, 언제까지나 사랑함. 곧 ‘시간’만이 사랑의 진실을 확인해 줍니다. 마르세유 타로는 메이저 아르카나 각각에 하나의 금구를 달아 놓았는데, <연인들>에는 ‘오직 진실만이 시험을 통과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그리하여 연인들은 날개 없는 존재들을 날게 하고, 날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을 그치지 못하게 합니다. <연인들> 카드의 도안에 거의 언제나 천사가 등장하고, 이 날개 단 존재는 날개도 없고, 심지어 벌거벗은 두 발뿐인 존재들에게 화살을 겨눕니다. 사랑은 둘 사이에 있고, 둘은 서로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더 높은 곳에 이끌립니다. 그것이 사랑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사랑 안에서 성장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랑은, 그 진실함 때문에라도 헤어지면서 끝이 납니다. 또는 건강하게 헤어질 용기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함께 가게 해 줍니다.


이 강력한 극성들이 출현하고 눈 먼 질주에서 무언가를 배우면 일곱 번째 아르카나 Ⅶ. The Chariot, 전차가 등장합니다. 상극으로 갈라선 여섯 번째 아르카나 <연인들>과 아홉 번째 아르카나 <은둔자>는 <전차> 안에서 ‘모순’을 느끼면서 ‘공존’합니다. 그제서야 이야기는 다음 단계로 진화할 준비를 마칠 것입니다. 그래서 전차는 원형으로서 ‘무죄한’ 세 개의 아르카나가 지나간 뒤, 세계 속을 살아가는 ‘유죄한’ 존재의 첫 번째 양상(황제)부터 이미 여전히 같이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연인들’의 시험을 거친 다음, 남김없이 낱낱이 까발린 ‘연인들’의 신비를 벗긴 신비에 이어서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당신은 <연인들>이라는 시험을 받아들기 전 <은둔자>라는 준비를 단단히 해 두셨습니까? 보통 우리는 크고 작은 시험에서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요행을 바라며 회피하다가 실패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했는지 깨닫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시전합니다. 헛짓은 아닙니다. 그나마 그렇게 한 뒤라야 우리는 다음 시험을 좀 더 잘 치를 테니까요.




*여덟 번째 아르카나는 <힘>인가, <정의>인가?

둘째 층의 시작은 오컬트 집단인 황금새벽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 이전에는 <정의>였습니다. 황금새벽회에서 이것을 오류라고 보고 열한 번째 카드와 맞바꾸어서 지금처럼 Ⅷ. Strength(힘) Ⅺ. Justice(정의)로 굳어졌습니다. 황금새벽회 타로는 내부에서 명상과 마법적 수행의 단계로 저마다 78장을 그려나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든 하나의 덱을 가졌기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 회원인 아서 웨이트와 파멜라 스미스가 ‘웨이트 덱’을 [타로 카드의 그림 열쇠]라는 책과 함께 출판하면서 비로소 클래식 타로와 위치를 바꾼 Ⅷ. Strength(힘) — Ⅺ. Justice(정의) 체제가 정립되었습니다. 현대 타로는 훨씬 자유로워서 다시 클래식 타로의 위치가 맞다고 여겨 둘을 맞바꾼 예도 많지만, 크게 보아 클래식 타로와 모던 타로를 가르는 뚜렷한 차이로 ‘힘’이 ‘정의’와 자리를 바꾸어 여덟 번째 아르카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룰 ‘전차’ 뒤에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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