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데서 생각하지 마라
신체 능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운동 강도를 높인다. 한 번의 강도와 빈도, 양 전부에서 몸을 더 힘들게 한다. 그러면 몸이 더 자유로워지는 줄을 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 호흡이야 조절하고 상태 보며 관리해야 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서람들은 정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정신의 부담을 줄이려고만 한다. 쉬는 여가, 완전한 이완에서 대가들의 사고가 날뛰는 건 정확히 말하면 정신의 성장이 아니라 표현할 여백을 마련하여 풀려나는 것이다. 대가의 사고, 큰 생각, 틀림없거나 믿고 갈 생각은 시련 중에, 고초 가운데 싹 트고 자란다.
우리는 잘 생각하겠다면서 자꾸 생각 잘할 자리를 피하고 순간을 봉쇄한다. 생각이 크려고만 하면 뚝 잘라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여유롭게 쉽게 생각하려 한다. 거기서 드는 생각이란 일종의 회상, 한 번 지나간 것의, 밖에서 왔든 안에서 왔든 시효가 다한 것의 되풀이다.
힘들고 어려우면, 잘하고 있는 거다.
몸 돌보는 것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만!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썼으면!
당신 삶이 바뀌고, 당신 곁의 삶들이 바뀌고, 인류가 진보하고, 세상을 구할 터인데, 곧죽어도 그것만은 못한다. 마음 편하게 무슨 생각을 하겠다는 건가. 그건 시련을 지나온 이들에게, 그들이 해낸 것들을 우리가 나누어 받게 위해 억지로 칭송하며 떠맡길 부상이다.
당신은, 나는, 살아야 한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쉬지도 못하고 미칠 것 같고 해도 안 되는 일들을 계속하며 태풍을 통과해야 한다. 그럴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길도 길 걷는 법도 말해 줄 수 없다. 상처는 말할 자격, 표다.
"고단한 자여, 모험을 끝낸 자여, 그대를 쉬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네. 어쩌면 우리 중 누구도 다시는 가 보지 못할 곳을, 어쩌면 그대 이야기를 길잡이 삼아 가 볼 수 있게끔. 자, 쉬었는가. 목을 축였는가. 이 공기, 이 울림이 그럴싸한가. 말해 주게. 단단히 듣겠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