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공유(2)

하현상이 부른 <불꽃놀이> 노래 읽기[解明]

by 이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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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노래읽기[解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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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하현상 작곡 하현상 , 제인스(Jayins) , Naiv 작사 하현상 / 2021년 발표


호피폴라. 아이슬란드 말로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다'는 뜻을 지닌다.

2019년 JTBC슈퍼밴드 도중 결성된 4인조 그룹. 시규어 로스(Sigur Rós)의 2005년 발매 앨범 《Takk…》(‘고마워요’라는 뜻) 수록곡 중 〈Hoppípolla〉(물 웅덩이에 빠지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멤버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흠뻑 빠지길 바라고, 희망과 감동,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하현상은 이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연주를 맡았고, 그룹활동과 솔로 활동으로 많은 싱글 앨범을 발표했다. 이 곡 <불꽃놀이>는 2021년 8월 28일 디지털 싱글로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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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물어가는 태양이 어딘가

떠밀려가던 내 뒷모습 같아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간주)


☞노래는 전주없이 쉼없이 곧바로 시작한다. 이 다급한 시작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맨처음 부르고, 태양이 저무는 것과 자신이 떠밀려가는 것을 나란히 놓는 것으로 노래를 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전부도 아니고, 전면도 아니며 후면, “뒷모습”이다. 노래하는 이는 둘을 완전히 등치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태양이 어딘가” 닮았을 뿐이라고, “내 뒷모습-‘이다’”라고 하는 대신 “같아”라고 노래한다. 이를 논구할 겨를 없이 노래는 센 말들로 계속 달려간다. 듣는 이가 생각할 겨를 없이 노래를 따라가도록, 노래가 몰아가는 대로 몰려가도록 이끈다.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이렇게 두 번 반복해서 부르고 이렇게 계속하는 과거완료의 시제에 붙여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묻는다. 지르고 저무는 것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떠밀고는 그 뒷모습에다 비로소 묻는다. 이 노래를 통틀어 이 대목의 간주가 가장 길다. 말이 없는 악기의 울림 속에서 듣는 이는 노래하는 이가 방금 던진 말뜻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정확하게는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들었으나 들은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일까, 아닐까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노래하는 이는 그저 ‘묻고’ 있기 때문이다.



[2]

[2-1]

돌아가자

벌써 모두 가버렸으니까

아쉬운 것투성이지만

아름다운 건 끝이 있다는 것 아닐까


[2-2]

그리운 맘

서러워지는 맘

가는 길에 두고 내릴까

저 멀리 저 멀리 말이야


☞ “돌아가자.”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향해 돌아가는가. 노래하는 이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노래하는 이는 돌아가려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거기 가서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알지 못하고, 꿈꾸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하는 것은 한 가지, “벌써 모두 가버렸으니까.” 이것은 충분한 이유인가? 노래는 이것을 말하여 주지 않는다. 대신에 노래는 “벌써 모두 가버렸”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감’의 충분한 이유가 되는지 들려 준다. 노래하는 이는 “아쉬운 것투성이지만” “끝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건” “아닐까” 물어 본다. 그는 알아야 하고 아는 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마음속 끌림이 먼저이고, 도리어 듣는 이에게 동의同意를 구한다.

☞ “그리운 맘”은 “서러워지는 맘”[애심哀心]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고 여기는 마음은 여기 머물지 못하고 돌아갈 것이기에, 돌아갈까 생각하기에 서러워진다. 이 섧은 마음은 그리운 마음과 한몸이다. 일체가 지닌 양면이다. 하나의 입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처럼? 아니다. 그것은 하나가 두 권능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둘은 보통 동시에 하지 않는 것이다. 둘은 분명 방향이 다르다. 그러나 그리운 마음과 서러워지는 마음, 서러워하는 마음, 점점 더 서러운 그 마음이 서러워하는 것 그리고 그리워하는 것은 한 방향이다.

☞반전은 그 다음에 온다. 노래하는 이는 이 둘이자 하나인 마음, 둘이 아닌[불이不二] 마음을 돌아-“가는 길에” “두고 내릴까” 묻는다. 한 번 물으면 질문이겠지만, 재우쳐 그 까닭을 부연敷衍하여 적극적으로 동의를 구하고 있다. 가는 길에 둔다는 것은 돌아가기 시작하는 이곳에서 볼 때 점점 더 다가오고, 그 시점에는 그곳이고, 지금과 점점 가까워지는 곳이다. 그러나 “저 멀리 저 멀리 말이야”라고 말함으로써 거리距離를 재는 시작점이 여기가 아니고 거기라는 것, 돌아가려는 데라는 걸 알려 준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여기-에-있음’은 “끝”-이다,라는 것, 다시 말해 “끝-이-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래하는 이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이렇게 말하여진 것이 듣는 이에게도 스며들기를, 거기에 동조同調하기를 촉구한다. 한참 준비한 식사를 대접하며 입밖에 내지는 않아도 맛이 어떤지 궁금해 눈으로 자꾸만 ‘어서, 어서!’ 하고 재촉하는 것처럼.

☞노래하는 이는 지금은 서러워하고 있지만, 그리워하고 있지만, 돌아-가려는 곳이 ‘멀지’ 않고 ‘가까운’ 곳이 되는 분기점에서, 그리하여 더는 가깝지 않고 점점 “멀리 저 멀리” 있을 곳에 “두고” “내린다” 마음을 거기 두고 늘 돌아보고, 새롭게 그리워할 것/곳으로 삼지 않는다. 거기는 이제 돌아볼 곳이 아니므로,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게 내 마음에는, 내 마음으로는 한 번 있고 더 없는 곳이기에 마음은 거기 ‘세워 두지’ 않고, 보이지 않게, 사라지게, 저물게 “내”려 둔다.

☞더욱 슬프게도 또는 결연하게도 또는 아무튼 반어적으로, 노래하는 이는 이렇게 “끝이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거라고 노래한다. 비록 끝이 나더라도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다, 끝이 있으니까 아름답지 않느냔 거다. 그러므로 ‘여기'는 노래하는 이에게 버림받았다. 노래하는 이는 이곳을 노래하지만 이곳을 떠날 것이기에, 버리기에 이곳을 아름답게 기억한다, 기억하겠다고 다지고 있다.


[1']

저물어가는 태양이 어딘가

떠밀려가던 내 뒷모습 같아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간주)


“저물어가는 태양”은 “어딘가” “떠밀려가던 내 뒷모습 같”다. 맨처음 전주도 없이 즉, 아무런 예고 없이 터뜨리던 때와 같이 노래하는 이는 “태양이” “저물어가는” 것과 “내 뒷모습”이 “떠밀려가던” 것과 무어가 어떻게 “같아” 보인다는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똑같이 달려가며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릴” 거라고 소리지를 뿐이다. 그러나 처음 외침과 지금 외침 사이에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고, 태양이 저물어가는 것이 또는 내 뒷모습이 떠밀려가는 것이 바로 “돌아가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노래는 직접 아무것도 들려 주지 않지만 둘이 이어서 불러진다는 것으로 필요한 설명을 다하고 있다. “맘”을 “두고 내릴까” 하는 것은 거기 두어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하는 이가 하고 있는 일은 거꾸로 “남김없이 사라져버”리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두고 내릴까 묻는 것과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묻는 것은 한 가지 일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노래하는 이는 이곳을 떠나려 한다. 노래하는 이가 이곳을, 지금 여기를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 여기를 떠나고, 자신을 여기에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래하는 이가 여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여기서 다 태워버릴까 되풀이해서 묻는다. 이 저어함, 머뭇거림이 스스로 돌아갈 이유를 찾고, 선언하거나 대답하는 대신에 “벌써 모두 가버렸으니까”라고 자신을 뺀 나머지 “모두”를 호명하여 탓을 돌린다. 그러나 ‘벌써 저들은 다 가바렸으니까’라고 하지 않고 “벌써 모두”라고 말함으로써 모두에는 자신도 묻어 있다고 밝힌다. 그래서 노래하는 이는 자기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를 부정하는 것, 이 거부拒否가 지금 가장 강하게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3]

차가운 말

시려워지는 말

가는 길에 다 두고 내릴까

더 멀리 더 멀리 말이야


☞ [잠깐의 간주 뒤에] “가는 길에 다 두고 내릴까”가 무슨 말인지 노래하는 이는 이제 처음으로 풀이해 준다. 그러나 이것도 직접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 듣는 이가 스스로, 다만 이 말이 다른 데 아닌 여기 있다는 것을 통하여 스스로 분별하고, 식별하고 깨우치게 한다. 이제 우리는 “그리운 맘”은 “차가운 말”과, “서러워지는 맘”은 “시려워지는 말"과 대응케 한다. 하나의 마음은 하나의 말과, 보다 정확하게 말하여 하나의 마음 상태, 마음가짐은 하나의 말과 대응한다. 그립다고? 차가운 거다. 서러워진다고? 시려워질 거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래를] 듣는 이(청자聽者)는 노래하는 이와 함께 ‘여기’를 버릴지, 여기로부터 “더 멀리 더 멀리” 떠날지 결정하도록 초대받는다. 노래하는 이는 듣는 이에게 “…내릴까”? 하고 물으며, 부연하고 있다, “더 멀리 더 멀리” “말이야”라고. 친근親近하게 묻고 있다. 그(노래하는 이)는 돌아-‘갈 곳’, “가는 길”의 끝에 이르는 곳에 더욱 근친近親자者이지만 지금 갈 곳이 아닌 여기, 그가 떠나서 둘러본 낯선 이국異國이자, 별것 아닌, 그곳이 그곳이어서보다도 그곳에 머묾이 “끝이 있”어 의미로운 곳에 속屬한 이들에게, 만일 우리가 여기 속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따로 노래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근친자가 아닌 먼 데 있는 이들에게, 그런 호명으로 우리를 멀리하면서도 친근하게 군다. 그 부름은 우리를 거기[여기] 있으라고 하지 말고 그에게 여기이고, 우리에게 아직 저기인, 알고 나면, 가 보고 나면 ‘거기'라고 부를 곳에 오라고 초대하는 것이다. 너도 역시 거기서는 더 멀리, 멀리 떠날 거 아니냐, 그게 좋지 않겠느냐, 나에게는 그렇다, 너에게도 그럴까? 하고 묻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질문하며 우리에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다. 노래하는 이는 부드럽게 요청하고 촉구하고 초대하며, 근원적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말이다.



[1'']

저물어가는 태양이 어딘가

떠밀려가던 내 뒷모습 같아

태워버리고

태워버리다가

남김없이 사라져버릴까


☞ 반복한다. 삼세번. 충분하다. 되풀이하는 건 終章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계속해서 그렇게 멀리 멀리 두고서 여기가 아닌 저기에, 그의 거기로 다가가고 있었다. 여기가 끝이 있어 행복하게도 거기 끝으로 돌아간다.

노래도 끝나간다.


[4]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있다

짧은 순간 부서지면 안 될까

울어버리고

웃어버리다가

아직까지 남은 건

어디를 보게 될까

(아주 짧은 후주) (F.O.)



☞ 필요한 또는 불필요한 친절. 처음부터 전주 없이, 다시 말해 아무런 설명도, 차비할 것도 없이 곧바로 내질러도 될 만큼 분명하게, 떠나겠다고 이렇게 떠나려는데 어떠냐고 노래하는 이는 물었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머물러있다” 갈지를 묻는다. 물론, “조금만 더 곁에”. 이때 “조금만”은 적은 양을 나타내기 위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안타까움, 최소한의 긍정을 나타내는 수사다. 그리고 이 긍정은 작지만, ‘조금’이지만 매우 분명하다. 그리고 머묾의 까닭은 여기 어디가 좋아서가 아니다. “더 곁에” 있겠다는 거다. 끝이 있어 아름다운 이곳은 그렇지만 노래를 듣는 이, 노래하는 이가 초대한 우리가 있어 아름다웠다. 노래하는 이는 이곳이 부질없다는 걸 알고 선포하면서도 하지만 너는 의미 있었노라고 말해 준다. 그러나 미련이 있거나 판단을 의심해서는 아니다. 이미 노래하는 이의 뭇 동무들이 “모두” “벌써” “가버렸으니까”. 그래서 그는 단숨에 지체없이 “짧은 순간”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역시 우리에게 허락을 구하여, 자기 행위를 결정하기 위하여 묻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 행위, 자기 존재와 자기 존재의 이행移行을 이미 결정했다. 노래하는 이(인간정신, 인간의 시정신詩精神, Poetic Genius)는, 노래 부르는 이(가수 하현상) 안에서 위엄차게 자신이 여기 아니라 거기에 속했다고, 그러나 부드럽게 선포하고 있으며 전이轉移, transitus를 시작했다. 이 계시啓示의 빛 안에서 우리 또한 초대받고 있다. 그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명명백백한 결정에 동참할지, 우리 또한 “짧은 시간” 그러니까 한순간, 결단의 순간, 합당하고 인색하지 않은 작별의 순간을 보내고서 이곳에서는 “부서지면 안 될까” 묻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울어버리고 웃어버리다가” 그 결행決行에도 불구하고, 결행 후에도 여전히 “아직까지 남은 건”, 그러니까 우리가 ‘미련 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어엿하게 ‘남는 것, 우리 자신의 흔적’, 흔적으로서의 존재는 “어디를 보게 될까”?

긴말을 할 수 없다. 후주는 아주 짧다. 마지막 초대이기 때문이다. 한 번뿐인 초대이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이는 이미 떠나고 있다, 노래하는 이들 모두 떠났고, 마지막 노래하는 이가 우리에게 “one of them, one of us”(그들 가운데 하나, 우리 가운데 하나) 어느 쪽일지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마주칠 것이다. 그대가 결행하여 전이하며 마주칠 것, 그대는 “어디를 보게 될까?” 우리는 같은 곳을 볼 것인가?

다음 해변에서 우리는 타자로서 마주볼 것인가, 동일자로서 고유하면서도 둘이 아닌[不二] 이로서 같은 데를 보며 같은 풍경을 노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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