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또는 능력이 형성하는 두 방식. 삶과 죽음의 길.
조건 또는 능력이 형성하는 두 방식. 삶과 죽음의 길. 현자의 돌 둘.
시인의 돌이 두 개의 극점이 있다, 소소하게 태도를 결정하는 것들이 있지만 결국 둘로 수렴된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조건과 능력도 두 방향으로 나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입자로서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것은 가변적이고 무수히 가지치기 하며 그것들을 한데 묶을 수 없습니다. 입자라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데 초점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관계는 불변합니다. 연속하기 때문에 모든 변화가 하나이며 여럿입니다. 스펙트럼입니다. 잇다, 잇기, 이어짐이 핵심입니다.
관계나 사건은 연결되거나 또는 연결하/되지 않거나 두 길입니다. 그런데 단절, 연결되지 않음은 사실은 불가능합니다. 수사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있다면 있는 것들 중 일부이며, 있는데 이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단절은 그래서 실은 고립을 뜻할 뿐입니다.
고립은 이어진 외면, 부득이 전체와 맞댄 혹은 주체적으로 기술해서 외부와 맞닥뜨린 외면을
내면이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열입니다. 여기서 근원적 불안이 싹틉니다.
공포의 정서가 단절 즉 연결부정을-계속함의 동력이고 무기입니다. 아귀가 제 몸을 먹듯 소멸할 때까지 수축합니다. 그러나 소멸시킬 에너지가 없어 무제한한 고통이 남습니다. 모든 걸 제 차지로 삼으려 하고, 이 자기 학대가 기아를 부르며 소멸시키지 못하는 소멸 행위로 인해 그 고통에 남겨집니다.
반면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고, 세계사건을 고스란히 제 안에 받아들이는 일은 자기 일치이며 개방이고, 곧 확장입니다. 확장하는 일치, 개방을 유지하는 동력은 애정과 관심입니다. 확장은 외부에 연결되/하는 것이며, 외부에서 힘이 오므로 무한정 공급됩니다. 나와 일치할 뿐 아니라 너와, 세계와도, 신과도 일치합니다.
“어데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대타자(大他者)―한테서” (시편 120편 1-2절).
세계에 있는 활동은 결국 소멸에 이르는 수축과 연결하는 개방 두 개의 운동뿐입니다.
확장은 외부를 자기 안에 들이는 행위이고 이때 이물감과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마침내 더 큰 자기, 더 참된 자기를 이루고, 마침내 세계가 나와 일치하는 세계자아라는 영광에 이릅니다. 길이요 방법.
수축은 잠시 더 크게 지배하고 더 높이 군림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지만, 소멸하고 허기지고 그러고도 채 사라지지 못하고 마침내 갈라지고 뭉치는 고통에 놓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십시오. 또는 죽습니다.
사랑하거나 죽거나 다른 길은 없습니다.
Therefore, Do love or 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