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그릇
“그대는 부족하다.
부서진 그릇이로구나.
알맞다.
짝할 바 없구나.
이 그릇을 쓰겠다.”
나는 골짜기에서
신의 이 말씀을 ―
또렷하게 들었다.
궁금해 바위 위로
고개를 내밀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낯선 자
신들은 새것을 즐거워하니
가장 낯선 나를
신들은 탐내노라.
나는 얼마나 낯설어질까.
나를 먹고 신들은
얼마나 멀리 갈까.
그들이
변할 만큼
멀리 갈 수 있을까?
신들은 신성과 헤어질 수 있을까?
그러고도 자신이라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신들이 가진 저 유일한 믿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상승과 하강 중
내가 되기 전
내가 먼저
부서지지는 않을까?
나는 늘 생각이 많았으나
삶이 늘 앞서 갔다.
가끔씩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부서졌으나
비로소
이전의 모든 한계와 규범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의될 것.
나 아닌 것들을 한껏 맞아들이고
그들과 더는 너와 나로 만나지 않고
너는 나
나는 너
새 그릇이 될 수 있으니
부서짐을 꺼리지 않겠다.
라고
배우기를 다짐했다.
온 세상에서
온 세상과 함께
온 세상을 배우기로
온 세상을 지우고
새로 짓기로
다짐하였다.
그럴 줄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