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위험한, 잘 ‘읽어내야’ 하는 질문
딜레마
앤 설리반은 인류사의 교사 가운데
가장 큰 인내를 발휘하고
잠재성을 유도해 냈을 것이다.
이런 평가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앤 설리반은
어리고 중복 장애를 지닌 헬렌 켈러를
때렸다.
때로 굶겼다.
주된 방법은 아니지만 망설이거나 아끼지 않았다.
어떤 조건에도 가르치길 포기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 핑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지금은 가르치지 않아도 지키라는
배우지 않아도 인정하라는 것들이
아주 많다.
그렇게 각자는 교양인으로 남고
문제는 미래로 떠넘겨진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로.
조만간 사회는 그를 무시하고 멸시하다가
분노한 혹은 정신없는 채인 그를
처단하고 격리할 것이다.
벌써 다른 무고한 희생자를 낸 뒤에.
아무도 손에 피를 땀과 눈물을 묻히지 않고
무작위의 희생 뒤에는
나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라며
정의로운 심판자요 배심원이 되는 세상이
충분한가?
이래도 되느냐, 저래도 되느냐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타이밍이나 인품, 학생의 자질 등 변수를 따지고 통제해서 맞는 답에 접근할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만 묻고
무엇을 왜 하는가 묻고 답하지 않는다면
이 모순은 해결 불가능하다.
추신) 희망 섞어 읽으면 자신의 기질대로 해 버리는 빌미로 쓸 수 있어 사족 같지만 보태자면, 당신은 앤이 아니다. 당신 앞의 누군가도 헬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당신과 상대방이 어떤 우주를 만들 거냐, 가능하며 완수할 것인가 묻는 것. 남이 한 걸 따라하는 경우처럼 분석과 종합이 아니라 상상력을 책임과 결부하는 것, 로고스를 육화시키는 종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