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름
너의 이름을 묻지 않은 채 세 번을 만났다. 너도 내 이름을 묻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약속한 듯 다시 강어귀 한 번도 줄을 풀고 띄우는 걸 본 일 없는 낡고 색이 바랜 배 앞으로 나왔고, 너는 늘 거기 있었다. 미리 약속한 것처럼 너는 곧장 내 앞에 천을 펼치고 서른 개의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들은 보통의 점이 박힌 정육면체가 아니었다. 정삼각형 면들이 맞물린 정사면체 주사위는 세 면이 드러나 함께 뾰족하게 위를 향하고 한 면은 바닥을 향해 감추어졌다. 주사위의 결과는 이 보이지 않는 면이다.
불쑥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지, 가려진 면에는 사실 다른 패가 새겨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솟구쳤지만 그걸 묻거나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날은 주사위의 결과를 읽어 주기 전 —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준다 — 너는 나즈막히 한마디를 보태었다. “마지막입니다.” 그다음부터 너의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위협을 느꼈고 칼을 빼려 했지만 온몸이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손가락을 움직이자 주변의 안개가 걷히고 갑자기 늙어버린 네가 내 진짜 이름을 불렀다. “아서.”
내가 그대, 멀린을 알게 된 날이다.
*문학동아리 ‘이듣’ 5분 제한 즉흥글쓰기. 제시한 제목: 진짜 이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