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 평가전형안내(案內) 혹(或)은 보고(報告)

— 찢어진

by 이제월

평가전형안내(案內) 혹(或)은 보고(報告)

— 찢어진




아무거나 좋은 말만 하기로 해

지켜야 할 규칙은 하나, 진짜여야 할 것

그러나 오늘 꼭 하나씩은 좋은 점을 찾기

잘했다고 멋지다고 할 수 없으면

가만 침묵하도록 해, 하나도 감탄을 보태지 못하면

그대로 감점이야,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운 거니

웃으며 말을 마치자

모두들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골똘히 좋은 것을 떠올렸다

뭐가 좋았지 어째서 좋지 좋은 게 뭐지

쥐어 짜지 않아도 볕은 기어코

보송보송하고 따뜻해질 때까지 말린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 충만한 시간이

정오처럼 계속되고

우리 모두 말을 그칠 때쯤

빨래 널길 두려워하는 이도 없고

마른 옷들을 거두는 게 서러운 사람도 없다


그럼 그렇지 꿈이었다

하지만 무한을 살지 않아도 되는데

알거나 감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닿지 않아도 믿고 희망하면 그만인데

모두 고집스레 나쁘고 힘든 쪽만을 믿는다

그래야 현실이지

그러고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아니면 석고처럼 얼굴을 굳히고

우악스레 빨래를 비튼다

안 그러면 말릴 수 없다는 듯,

— 누가 좀 말려 주어! —

불행을 믿고 불행을 쓰고 불행을 퍼뜨리며

모두 헤지고 튿어질 때까지 아니, 곤죽이 되도록 녹아 없어질 때까지

분명한 방향으로 확고하고 성실하게 비명을 지르며 내달린다


꿈이 아니었다. 또렷이 기억한다

우린 모두 축복하고 왔는데

지난 모든 것을 기뻐하고 감사했는데

여기서 대체 왜 다들 광신도가 된 걸까?

파멸은 얼마나 매혹적인 거지?

더러워지면 빨아서 입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자 했는데

새 옷을 입는 대신 두드리고 당기고

비틀어 찢고 있지

이 생을 어쩌지, 어떡하나


어리석댄다, 철들랜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

어쩌나, 어떡하지

비틀지 않아도 볕은

빨래를 말리는데

모두 잠겨서 널릴 생각을 안 한다

반짝이는 건 전부 환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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