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것은 무엇인가
맑다는 것은 티없이 맑고 순일(純一)한 것이다. 그러나 순일함이 맑음의 전부는 아니다. 시작은 그렇고, 흐리고 개는 정도에 절대의 척도가 되어 주는 것이 맑음이다. 그리고 노을이 진다. 하루 첫머리 또는 땅거미를 이끌며 오는 노을은 햇빛의 일사각(日射角)의 변화에 의해 공기 중에 산란하는 다채롭고 숨막히는 광경을 보여 준다. 그것은 사물의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풍경이다.
맑을수록 그 색채의 모험은 더욱 거침없다. 맑음은 그러나 다른 것을 담보하지 않는다. 한순간 예고 없이 천둥 번개를 낀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바람 한 줄기 구름 한 점 없는 맑음은 매서운 무더위로 온몸을 끓게 하기도 한다. 창밖의 맑은 하늘, 맑게 비친 수풀에 혹해 밖에 나섰다가 으스러질 것 같은 추위에 놀라는 일은 다반사(茶飯事)다.
맑다는 것은 내용은 덮어 두고 무엇이든 오는 대로 가리지 않고 그대로 놀게 판을 펴는 것이다. 그래서 맑다. 맑은 것은 무죄하나 죄악을 가로막지 않는다. 이 투명(透明)을 뚫고 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나오는 것, 넘어오는 것은 무엇인가.
맑다는 것을 타고 오는, 순일한 것에 색을 붓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물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