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왜
생각을 벼리기 위한 첫 번째 초식은 멈춤이고,
둘째 초식은 보기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초식은 묻기입니다.
왜 묻기냐, 왜 질문이냐?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주도하는 행위인 한편
상대의 권리를 전혀, 아무것도 침해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유를 최대한 확장하되,
상대의 자유를 조금도 침범하지 않는.
인격적 존재로 상정하여 ‘상대(방)’(이)라고 하였지만,
비인격적으로 바라보고 ‘대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성을 지닌 무엇을 향할 때에도 질문은
어떤 답도 미리 선행시키지 않습니다.
실제로 확인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전제되지 않습니다.
질문은 확인하는 과정이고
대상이면 대상대로
상대면 상대에 의해
응답이 발생합니다.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 ‘보기’요,
잘 보기 위해 내가 ‘멈추는’ 것이지만,
가만 두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보는 때를 앞당겨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 상대를 흔드는 것, 살짝 콕 찌르는 행위가 질문이기도 합니다.
질문은 내 궁금증에서 비롯하더라도
발화(發話)하는 순간 그것을 전파합니다.
그러니까, 상대도 내 질문에 같이 궁금해할 수 있다는 게지요.
그러고나면 그가 답을 내놓든, 달리 대꾸를 해서든
내가 답을 찾는 과정을 돕습니다.
통 해독할 수 없더라도 우선은 내가 멈추어 서서 볼 것이 발생합니다.
질문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시작’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멈추고 볼 줄 아는 사람이
처음 할 행동 역시 묻기일밖에요.
왜 묻기부터 앞서는지
설명으로 충분할까요?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