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나무야

살아서 갑니다

by 이제월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전국에 휴교령을 내린 때

본래 전국의 대학생들은 진작부터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즉각 전국에서

각 대학에 모여 봉기할 것을 약속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킨 것은 광주 딱 한 곳이었고,

광주는 어떤 오점도 없이 아름답고 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도청에서 마지막 작전으로 해방 광주의 대동 세상이 강제 종료된 후,

아니, 그것은 종료된 게 아니고 잠시 멈춘 것이었고

겨울날 언 강 아래 강물은 사실 쉬지 않고 흐른 것처럼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87년 6월 10일로 상징되는 유월 항쟁이 이어집니다.

두 열사의 영혼결혼을 치르며 불리운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과 함께 불리웠습니다.

열사들을 부르는 목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절규를 함께 목놓아 토해냈습니다.

산 자들은 앞선이들을 뒤따라 죽으러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죽더라도 사는 길을 걷고

살아서 죽는 길을 버린 것입니다.

이 형이상학적 주제를 구체화, 육화(肉化, incarnation, embodiment)하기 위해

몸입히기 위해

처음에는 헌법을 바꾸었습니다.

이 DNA 설계를 실제 대한민국에 이식하기 위한 첫 번째 대통령직접선거는

야권의 분열을 이용하고 KAL기 폭파 사건을 정치 도구화해

선거일에 맞추어 유력용의자를 입국시켜 이 나라가 비정상임을, 여전히 비상사태임을 웅변하고 각인한 신군부 2인자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여소야대였고

이를 타개하지 않는 한 독재를 이어가기는 난망하였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 오랜 동안 민주화의 축 중 하나였던 야당 지도자 김영삼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며

신군부에 의해 축축되었던 구 군부의 이인자이던 김종필과 함께

광주에서 자국민을 학살한 학살자들의 정당과 이른바 ‘삼당 합당’을 실행하였습니다.

이용만 당하고 내부에서 고사당할 뻔한 김영삼은 정치력을 발휘해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군정 종식, 문민정부를 기치로 내건 김영삼의 정부는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김대중 등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박정희 이후 빼앗겼던 지방자치제를 부활시키는 등 실질적인 조치와

경복궁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선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는 등

상징적인 조치 들을 이어가 평가할 지점이 있지만

이어진 5・18 내란 수괴 전두환에 대한 사형 언도 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합당의 여파로 잔당들의 정치 생명을 잇고 되살려 준 점,

박정희가 획책한 가상의 지역감정을 진짜 영호남 지역 대결 구도로 고착시킨 점,

IMF 외환위기의 책임이 있음으로써 민주화세력을 경제에 무능한 이들인 것처럼 낙인 찍은 점 등

불완전하다는 말로 모자란 아쉬운 흔적을 남겼습니다.

문민정부의 불완전한 개혁은

성과와 독소가 여전히 자라고 있다가

12・3 계엄이라는 내란 사태로 불거졌습니다.

87년 체제가 여전히 오롯하게 육화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는 걸

오월의 영령들을, 앞서간 민주 열사들을 편히 쉬게 할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걸

우리에게 선연히 일깨워 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서서 나간 이들이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

의(義)는, 올바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날 광장에서 거리에서, 군인들의 총칼 앞에서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부축을 받았습니다.

우리 몸에 익은 현대의 물질만능 세계관으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이 신비를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흠뻑 체득해 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배울 게 아닌데, 교실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언론과 개인의 자리들이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니까

가장 나쁘지만 어쨌든 효력이 강한 방식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믿지 못하지만

이 헌정체제에 진짜 몸을 입히는 일, 법제를 실현하는 사람을 앉히는

두 가지 국민의 인사 행위, 즉,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일과, 위정자를 선출하는 일이라는

협의의 정치와 광의의 정치 모두를 해내야 합니다.

그게 생활문화와 각자의 삶의 방식에까지 고민하고 시도해 보아야

하나의 삶의 방식과 문화, 하나의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죽는 것을 보아

87년 6・10 항쟁으로 서울의 봄을 되찾았고,

멈춰진 시간은 마흔 해도 더 지나 한 번 더 짧은 겨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는 죽은 이들이 결코 죽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산 자여, 따르라”는 외침은

더욱 더 ‘살기 위해 죽기를, 기득권을 내려놓는 작은 죽음들을 마다치 말라고’ ‘그래야 산다’고 길을 보여 줍니다.


마음속 국가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봅니다.

대한민국은 따로 존재할 수 없고, 대한-국민을 위하는 부단한 실천 가운데 현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던 시인(만해 한용운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의 말을 따르면

나라사랑이란 이웃시민의 기룸을, 거룩함을 알아보는 것,

그것을 믿고 섬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일은 즐겁게 하십시오.


말하자면 우리는

12・3 내란의 밤부터 반 년 동안 줄곧

어둠을 가르는 빛을 보았고,

그날 분명하게

민주주의의 부활, 평범한 시민의 승천과 영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몸을 주세요, 춤을 출게요.


역사란

낳는 일, 기르는 일, 살아가는 일입니다.

죽거나 죽이는 일이 아니라.



나무에게 바람이



*님을 위한 행진곡은 한글맞춤법이 개정되어 지금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부르지만

이건 아무래도 ‘님’이지 ‘임’이 아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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