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시간을 도입하기

by 이제월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주효한, 그런데도 자주 잊히고 묻히는 방법은

<시간을 도입>하는 일입니다.


일단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고 합시다.

우리는 답을 구해야 하는데

답도 없고 변화도 없다면?

그럼 그건 이 상자가 답을 낼 수 없는 상자인 겁니다.

‘조건’ 아래서 할 일을 다했다면

조건을 변경할 때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바꾸어 말하면

‘가역성’(可逆性, reversibility)을 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이킬 수 있다, 이리저리 오갈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겁니다.

방향이 제한되면 적어도 그만큼은 자유도가 없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이 때문에

존재와 인식의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조정할 때 자신도 모르게

— 조정해야 하니까 — 조정할 수 있는 것, 가역성이 살아 있는 경계 안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방이 어지러우면 다음 토요일에 청소해야겠다,라고는 생각해도

지난주 화요일에 청소해야겠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요.

매번 예측이 틀리는 바람에 예기치 않는 일들에 대비해

보험도 들고 괜히 긴장도 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 자체가 불편할지도 몰라요.

불가능한 걸 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충 ‘당연하다’고 여기고 넘기는 것 속에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것들은 판을 바꾸는 열쇠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조건에 단지 순응하면

‘가치’란 ‘이익’과 분리되어 발생하지 않고 추구할 수 없는 ‘말뿐인 이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가치란 결국 이기심, 권력, 술수와 떼려야뗄 수 없고 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상상이 불필요한 방해물이 됩니다.


강대한 일본제국 아래서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되어 텐노 반자이나 외쳐야지

독립운동이란 건 웃음거리를 넘어 역겨운 일이 될 겁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도 단지 재수없게 됐다고 여길 뿐 문제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사고의 조건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없는 걸 주라는 게 아니라 있는 게 작용하는 것을 미분하고 적분하여 사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도입변수가 ‘시간’입니다.


시간을 거스르거나 빠르게 돌려 보세요.

이 시간과 저 시간을 조정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은 강한 중력에 의해 휘어지지만

역사적 시간의 흐름은 중대한 사건에 의해 휘어집니다.

특별한 의지와 설득, 공감이 발생하면 역사는 빠르게도, 느리게도

심지어 거꾸로도 흐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을 당장의 성패보다

역사적 평가나 자신의 삶의 기준, 가치관을 따라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한신은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 벌레 취급을 받지만 개의치 않고 공부해

새나라 한에서 고조 유방 밑에서, 오직 단 한 사람의 아래에서

만인 위에 군림합니다.

정확한 계산이나 예측은 아닙니다.

내 행동이 불러올 수 있는 것 중 바라는 쪽, 바람직한 쪽의 확률을 높이는 행동과 선택의 연속, 그 누적 끝에 다다르는 겁니다. 거기에 매 순간의 행운과 불운도 외부에서 불어옵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남들은 맞지도 않는 바람을 맞고

남들은 맞을 일 없는 바람을 타는 겁니다.

‘거기’에 가기 때문에, 거기-있기 때문에.


미리 그 자리에 가야지, 보이고서 달려가봐야 가 보면 끝난 뒤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도입해

자신의 행동을 미래의 자신에게 이롭게,

일생의 자신과 자신이 고려하는 이들에게 올바르게 바꾸어 정할 수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을 곳에 수(手)를 두고

그 한 번 사점(死點)에 둔 것으로부터 바둑의 흐름이 반전돼 승기를 잡기도 하는 겁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행불행이 바뀌고

유불리가 전도되며

맞고 틀림도 틀어질 수 있다면,

시간을 도입하는 사고는

단맛을 쓴맛으로 바꾸고

역겨운 것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기도 할 겁니다.

꿈꾸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하고 있는 일들이지요.

힘겨운 연습을 계속하고

고난을 감내(堪耐, 달게 받아 견디다)하는 것.


그대는 인내의 돌입니다.

그대 안의 가장 신성한, 가장 참된 중심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도입하세요.

생각할 때 반드시

시간이 일으키는 변화를 고려하고

그럼으로써

원한다는 착각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원하고 바라는 대로 살아 가십시오.


후회는 건강에 해로우니까요.


오직 바라는 것은 드높은 문화의 힘,이라던

백범 선생은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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