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처럼
하인리히 하이네*는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시인, 작가, 기자, 문학평론가였습니다.
이 정도는 인터넷 검색하면 위키백과에 맨먼저 뜨는 소개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모든 사피엔스를 통틀어 아마도 가장 낯간지러운 글을 쓴 사람이라는 점일 겁니다.
그의 시보다 간지러운 시를 상상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의 시는 붕붕 날고, 흠뻑 젖습니다.
어떻게 그럽게 곱게만 쓸까요?
그런데 그건 하이네의 일면입니다. 하이네가 가면을 바꾸어 쓰는 사람이란 게 아니라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겁니다.
하이네는 법학도로 출발하여 문학도로 전향했고
기자로 일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그는 프랑스 7월 혁명에 감동하여 프랑스로 이주하는데
독일 정부가 그를 추방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타지에서 타계합니다.
그사이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적인 글들을 쓰고
동시에 아름다운 시와 비판적이고 허무가 깊게 밴 글들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이상주의자였을까요?
몽상가인 걸까요?
현실에 발딛지 못하는?
그는 이미 삼십대에 두통, 약시, 마비 증세를 앓았으며
사십대에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서는 1948년 프랑스 2월 혁명 기간에 쓰러져서는
온몸이 마비되었으며, 이때부터 평생 침대에 누워 생활했습니다.
척추경련으로 사지가 뒤틀렸고, 부분 실명하였으며, 사망시에는 거의 완전히 실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글들도 여전히 아름다워서 그가 아픈 사람이라고는
온종일 침대에 갇힌 사람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세는나이 육십에 사망할 때까지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시와 ‘비판적’이고 ‘전투적’인 평론과 논문 들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건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기와 생을 예찬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일에서 한 발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는 여전히 책갈피에 새겨져 두근대는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당대에도 지금도 전장에서 온몸에 열기를 주는 호전성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문인, 사상가, 음악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였으나
그들 중 누구에게도 물들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마르크스와 엥겔스와도 가까워 사회주의의 영향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독창적이라기보다 독특했습니다. 결과물의 독창성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독창적인 시인이므로, 독창적인 인간이므로 성취물이 어떻게 나왔든, 미완에 그치든 말든, 특출나든 그렇지 못하든 오직 ‘하이네’로 호명할 수밖에 없는, 다른 어떤 수식으로도 가둘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이 가능한가.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고, 세상-속-자기로 살아감에 있어서 정직하고, 어떤 핑계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누구든지 ‘오직 한 사람’이 됩니다.
무엇이 되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되면 족합니다.
그가 온세상에 의미를 남기기에 충분하단 말입니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뜨거운 생의 전범이 되어 준 하이네를
가장 부드럽고, 가장 거친 이 사람을 기억해 주세요.
때때로 삶에 핑계를 대고 싶을 때,
멈추고
삶을 온전히 살게 격려해 줄 겁니다, 그 기억이.
가서 그의 시구들을 찾아 보실래요?
休
*Heinrich Heine, 1797년 12월 13일 뒤셀도르프 생 ~ 1856년 2월 19일 파리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