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축복하는 마음

by 이제월



마음은 사고로 형성되는 결과물이고

새로운 사고를 생성하는 원천으로도 작동합니다.

작용은 존재를 따르므로, 다른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면

내부 소질, 그 자체가 그러한 재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은 사고를 만들고

사고는 마음을 만듭니다.


축복하는 마음을 제안합니다.

축복하는 마음은

이기는 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실패를 추구한다거나

성공하기 위한 최선을 기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기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경청합니다.

왜?

상대의 뜻을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두드리거나 밀어내면서 가까워지기를 심지어 일치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실제로 싸우고, 부정하면서 설득하고 공감하고 동의하여

공동 때로는 대신해서 실행하기까지를 바랍니다.

틀렸습니다.

이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축복하는 마음을 제안합니다.

상대를 위하고, 상대의 원의를 이루고자 고민합니다.

그러나 진심이므로 상대 이상으로 상대의 생각을 발전시킵니다.

더 깊게 이해하고, 근거와 원천을, 결과와 영향을, 방법과 과정을 성찰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이런저런 제안을 합니다.

판단은 내려놓고

어떻게 할까를 같이 고민합니다.

그사이 문답도 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짚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중심은 상대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는 흔한 조언이나 충고와 다르게 계속해서 듣고

자기 생각으로 자기 생각이 떠오르듯

그대가 주는 것들을 받아 섭취하고, 소화할 것입니다.


어느새 둘은 하나이고, 한 자리에 있을 겁니다.


재미난 점은

매우 자주 — 당신이 충분히 냉정을 다해 숙고하고 열정을 다해 궁리했다면 말이죠 —

그 한 자리는

처음의 그의 자리도, 처음의 그대의 자리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개 그것은 새로운 자리

서로 영향을 미치며, 그보다 먼저 서로 경청하며, 신뢰하는 가운데

새로운 자리로 넘어가 있곤 합니다.

그리로 가서야 둘 다 함께 한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축복하는 마음으로

생각하십시오.

생각이

실행이란 걸 명심하고요.


아, 생각이 실행이란 데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음번에 좀 더 이야기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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