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대지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요한복음 16장 23절)

by 이제월


ᵒ“그날에는 그대들이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그대들이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분이 내 이름으로 주실 것입니다.

ᵒ아직까지는 그대들이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습니다. 청하시오,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 요한복음 16장 23-24절(200주년기념신약성서).



그날이 올까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청하라고 했습니다.

받을 것이니 청해서 기쁨이 가득 찰 거라는 건 무슨 말일까요?

부탁이 들어지면 워낙 기뻐하는 게 보통이지 않나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떠들 일입니까.


그리스도라는 예수.

“예수 그리스도”라고 붙여 읽는데 우리가 익숙하기는 하지만 희랍어 문법상 이 구절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문장의 형태입니다. 신약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구절들은 하나같이 다 저렇습니다. 다시 말해, 조사가 없는 저 언어에서 이는 한 사람의 호칭인 것이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인데, ……” 하고 이어지는 말머리요, 소개말이라 이 말이지요.

“예수는 그리스도인데”. 이 신원(身元)을 가리키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중요성이 큽니다. 말하는 쪽에서는 중요한 한 대목 한 대목마다, 그들의 주님이 하신 행적, 말과 행동을 전할 때마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듣는 쪽에서는 이어지는 말과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고 신비롭고 최고권능을 가진 이에게서 비롯한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의문>과 [좋게든 나쁘게든] <기대>를 가지고 듣는 것입니다.

고백은 의문과 기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어떤 일로든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백은 심폐소생술이나 하임리히법처럼 응급처치가 되기도 하고, 고백 공격이라는 말처럼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뿐더러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결과인 일방적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 듣는 쪽은 불편하기 마련인데, 불편을 이기는 것은 호기심입니다. 이게 무엇인가 하는 호기심은 의문과 기대. 상대 말의 진위와 깊이를 헤아리는 의문과 자기 인생의 얽힌 실타래나 세상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줄 그 어느 기회든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부딪쳐 일어나는 일렁임, 기대와 함께입니다. 때로는 물결이 쳐서 불꽃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그날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랍니다. 그때에는 저런 의문도, 저런 기대도 필요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다 알 거라는 거고, 다 겪고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 채움의 예고 속에서, 자신감 넘치는 말이 이어진 겁니다. 그때까지는 무엇이든 자기 이름으로 청하라고. 그거 받아들여질 거니까.

우리는 아직 진위를 모릅니다. 내가 그것을 믿는다손치더라도 그것이 당신이 이를 알리란 걸, 마땅히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단 걸 뜻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담보하지 않는 <믿음>의 요구입니다. 도전입니다.

그리고 이 문법 구조는 하나 더 도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예수에 달린 말이 아니라면, 떼어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예수는 그리스도인데”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단지 좋아서 매번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하는 이조차 깨닫지 못한 다른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애초 스승(라삐) 예수가, 예수의 제자(사도)들이 거듭해서 말한 것처럼 “하나가 되려”, “한 몸이 되라”는 게 — 하늘나라나 구원에 대한 언술(言述)처럼 — 은유(隱喩, metaphor)가 아니라 실제라면, 말 그대로 알아들을 말이라면,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처럼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그렇다면 청하기도 하고, 청하지 않을지라도 청할 때마다 이루어지리란 믿음과 희망은 지니고 있겠지요)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행위 즉,

기어코 그리스도가 되는 행위란 말이지요.


철수 그리스도(철수는 그리스도인데, 하는 뜻)나

예람 그리스도,

미영 그리스도,

……

……


끝없이 이어질 행렬이 가능하고, 아마도 실재해왔다는 뜻이며

당신은 단지 요청해라, 기도해라,는 요구를 들은 것이 아니라

너도 그리스도가 되렴, 하는 초대를 받은 것이라

뜻입니다.


예람 그리스도,

충만한 믿음으로 청하나니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아하!

기도하는 이, 청하는 이의 본래 마음은

누추하고 낮은 것이 아닙니다.

낮은 자리로 들어가지만

기쁨으로 차올라 높아지는 자리


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사랑 넘치나 더할나위없이 비통한 이들이

슬픔이나 우울, 분노에 젖어 찢어져 버리지 않는 것은

그 비탄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구나.


그대는 그리스도가 되십시오.

그리고 다른이를 그리스도로 알아보십시오.

알아채십시오.


청하지 않을 때에도 기쁨으로 가득 차고,

묻지 않는 동안에도 그날을 앞당겨 누리십시오.


애초에 그렇게 하나가 될 게 아니라면

우리가 형제요 한 몸이 될 게 아니라면

모든 뛰어난 이들은

우리에게 구원이 아니라

달콤한 압제자요, 노예살이일 것입니다.


자세를 낮춘 자는

세상 밖으로 탈출했습니다.

출구는 낮고 좁고, 분명합니다.


높은 데서 다른 전망이 펼쳐지듯이

낮은 데는 낮은 데만의 신비로운 전망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걸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그리스도인데, ……

깨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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