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허니 살아가도록 (백석 시 일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十五 燭(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陶淵明(도연명)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
— ❮문장❯ 26호, 1941. 4
이 아름다운 시는 白石(백석) 시인이 쓴 「힌 바람벽이 있어」입니다.
현대어로 「흰 바람벽이 있어」라고 많이 적고
한자로 쓴 데를 읽는 소리대로 한글로 쓰고, 때로는 한자를 병기하기도 병기하지 않기도 합니다만
저는 조금 원문을 살려서 ‘흰’도 백석이 처음 쓴 대로 ‘힌’이라 쓰고
한자를 쓴 대로 두고서 괄호 속에 빨간글씨로 — 마치 서구의 루브리카(Rubricae)처럼 — 음을 달아 써 보았습니다.
보면 ‘얼굴’도 “얼골”이라고 쓰고
‘하늘’도 “하놀”입니다.
시인의 언어 실력이 이게 무언가!
아닙니다. 그때는 우리말을 한글로 쓰는 표기가 통일되지 않았고
띄어쓰기나 그밖에 다른 맞춤법과 문장을 구성하는 문법 요소도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통일되지 않았다,가 아니라 아예 정립(定立)된 적이 없는 때입니다.
이를 정지용이며 윤동주며 백석이며 하는 시인들이 만들어 가는 시절을 겪었습니다.
시인은 말을 만듭니다. 어떻게?
시를 써서.
문장을 써서.
문인들이 논리적 정합성을 실현하도록 만들고,
그중에서도 시인들은 그것이 우리의 마음결과 속뜻을 살려 펴도록
갈고 다듬습니다.
그들의 본연의 감성대로
이 땅과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결이 살아나도록
살리고 살리는 최선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들이 뜻이 통하는 그것들이 우리 말의 보편적 규범을 이룹니다.
이런 문학의 시도들이
언중(言衆)의 말글살이를 담고,
이를 다시 확립하고 전파하는 일을 문법학자들이, 언어학자들이 해내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언어감각을 가진 언중의 삶에서 길어올린 말들이
본래 제자리를 찾도록
제 모습을 찾도록 탐색하는 문인들의 노력이 문장(文章)을 이루고, 글을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퍼지면서
우리말은 이렇게 쓰는 거야, 우리글은 이렇게 쓰는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갸웃거리며 차츰 알아지고, 알아가고, 알려지는 것입니다.
무심결에 그냥 쓰던 말들에 담긴 분명한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모두 신비가이고, 문인은 모두 탐험가입니다.
그런 시절이 우리는 아주 최근에 있었던 셈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로야 몇 세대가 지난 일이지만
겨레의 말글살이로는 아주 가까이 벌어진 일이지요.
그중 저는 백석이 남긴 시 「힌 바람벽이 있어」를 가져왔습니다.
‘힌’. ‘흰’은 무엇인가.
무엇이 흰가.
“힌” 것을 찾는 것은 무엇하는 일인가.
답하자면 우리가 몇날 며칠을 밤새워 이야기해도 부족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짧게 줄여 전해 봅니다. 길이는 그저 애틋함에 달린 것임을 알아 주십시오. 숨이 끊겨 더 길게 할 수도 없고, 애가 타서 더 짧게 할 수도 없는, 그러나 매번 다른 우연한 길이올시다.
하여 짧게, 흰 것은 빈 것이다. 그러나 찬 것이다.
흰 것은 본바탕 그대로 속살을 드러낸 것이요, 내용과 형식이 나뉘지 않은 것이며
꾸밈과 꾸미지 않음이 다르지 않고 다를 수 없는 것이다.
힌 것은 참으로 바람 같고, 참으로 벽 같아
‘힌 바람벽’이야말로 참으로 참된 말이다.
힌은 엄정하고 투명하고 힘세나 격(格)도 태(態)도 없다.
그것은 그저 그러하니
그 앞에 서면
거기 비치는 것들은 다 참이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것만이
그토록 사랑받음을
그토록 귀하게 여김을 탄로내며
사랑과 슬픔 지극한 가운데 있고
사랑과 슬픔이 지극하니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간다 고
시인은 압니다.
알아서 슬프고
알아서 기쁘죠.
시는 막연한 말맛으로 애상(哀想)을 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정신을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는 잔재주가 아니라
물속에 풍덩 빠뜨리는 것입니다.
아니, 정신차리고 보니 애시당초 수영중이었던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는
숱한 동무들과
유정(有情)한 것 무정(無情)한 것 가리지 않고
동무하여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을
이 슬픔을 느끼십시오.
이 찬란함과
이 불완전함을
만끽하십시오.
그로 해 외롭고
그로 해 높고
그로 해 쓸쓸하여
그로 해 언제까지고 가난하며
이 가난한 영혼으로
하늘로부터 사랑받고
땅으로부터 슬픔을 받으십시오.
그대는 큰 그릇이 되십시오.
투명한 힌 바람벽을 마주하십시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