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기: 도덕적 선언으로부터
세계사를 짚어볼 때 어느 달을 꼽든
굵직한 전쟁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달에 벌어진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들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그런 큰일들이 매달, 매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겹씩만 더 들어가면 이런 사태는 당장 매일로, 모든 날들로 확장해 버릴 겁니다.
7월에는, 이주에는 다행히 전혀 다른 중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
이 조약은 프랑스 외무장관 아스트리드 브라앙이 미국과 프랑스 간 불가침 조약을 제안하고
미국의 국무장관 프랭크 켈로그가 이를 다자간 조약으로 확대하면서 체결되었습니다.
조약의 서명일은 사실 8월입니다.
1928년 8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체결된 이 조약의 정식명칭은
「전쟁 포기의 일반 조약」(General Treaty for Renunciation of War as an Instrument of National Policy)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절감한 국제사회는
이 무익하고 비참한 야만을 멈추기를 바랐으나 1920년 국제연맹을 설립하고도 그 한계가 명확해 보였습니다. 이에 전쟁을 근본적으로 멈추는 수단을 고민하던 이들 사이에 이 조약이 제기된 것입니다.
초기 서명국은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이탈리아 등 15개국이었고, 후에 추가로 서명한 국가까지 60여 개 국가가 참여했습니다.
아직 인간 이성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터라 이렇게 큰 일을 겪고 났으니 우리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거야, 하는 이상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체결된 이 조약이 이 조약이 1929년 7월 24일 발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 또한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아무런 제재나 강제 조항이 없어서 선언, 도덕적인 선언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당장 조약에 서명한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먼저 침략을 감행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조약 체결 후 그리 오래지 않아 곳곳에서 이런 침략과 전쟁이 시작되었고, 2차 대전으로 전세계가 화마에 휩쓸릴 때까지 이런 양상은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결국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잠시 기분 좋은 이상주의자의 무력한 도덕적 선언에 그친 것일까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이상과 선언은 후에 실제의 힘을 발휘합니다. <전쟁을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금지>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분쟁을 해결할 것>을 결의한 이 조약은 제재나 처벌 같은 강제력이 없고, 전쟁이 무언지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미비하며, 서명국들이 먼저 침략에 나서 조약의 신뢰성을 훼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전쟁 금지’를 선언한 최초의 조약으로서 향후 국제법상 ‘전쟁 금지’ 원칙을. 세웁니다. 전쟁이 국가의 정상 행위가 아니라는 인식은 ‘침략 전쟁은 범죄’라는 원칙을 확립하여서 2차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전쟁범죄자들을 처결할 때에 ‘평화를 파괴한 죄’라는 개념을 도입시킵니다.
간접적으로는 유엔 헌장의 무력 사용 금지 원칙(제2조제4항)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며, 선제공격이 정당하지 않다는 논의를 촉발시켜 그 부당성과 ‘정당방위’의 개념도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침략 전쟁을 국제 범죄로 취급하여 현재의 국제형사재판소 시스템을 자리 잡게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봅니다.
전쟁은 정치 수단이 아니다. 범죄일 뿐이다.
지금은 상식으로 여겨지는 이 원칙이 자리잡는 출발점이 이 조약입니다. 내일이면 벌써 96주년이니 이 조약 이후 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겠습니다. 실천되지 못한 조약이었지만, 후대의 실천에 영감을 주었고, 사상적 논의, 현실 정치에서의 격론을 일으킨 만큼 헛되거나 그릇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씨 뿌린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르다고 해서 씨 뿌리는 수고가 없던 일이 되거나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무력은 어리석고, 해롭고, 부도덕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여기에 반해 강자의 무력을 정의의 수단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힘으로 여겨 왔습니다. 아, 지금도,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겠지요. 많을지도 모릅니다. 안 그런 사람보다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변화는 시작됐고, 우리는 그 와중에 있는 것뿐입니다.
움직이기 시작한 세계에 대하여
그대는 어떤 방향을 원하는가요?
바로 그리고 밀고 당기세요. 바로 그러자고 소리 높여 외치세요.
실천하고
영감을 주세요.
더 많은 실천
더 큰 실천이 따라올 것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