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시와 현실

너무 길다

by 이제월




Le serpent


I. Trop long.
II. La dix‑millième partie du quart du méridien terrestre.


― Jules Renard, Histoires naturelles, 1894.




쥘 르나르가 1894년 펴낸 『박물지』는 동물을 묘사하는 짧은 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의 시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알려져 있지요.


1부와 2부는 연속해서 읽을 수도 있고, 따로 따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부 순번을 빼고 읽으면



너무 길다.



제목을 포함해도 단 세 단어로 구성된 초단시(超斷詩)를 읽게 됩니다.


2부는 시의 본문만 무려 여덟 단어니까 좀 너무 깁니다만,


자오선의 4분의 1의 1천만 분의 1




1부에서 주관적으로 길다고 한 것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여 줍니다.


주관과 객관, 정밀한 수치의 제시로 이어지며

웃었다가 진지해지는

해학과 사유의 경험을 전해 줍니다.


물론 경험할 수도 있고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경험으로 열려 있고, 잡아 이끈다는 말이지요.



시는 종종

음식 냄새와도 같습니다.


반가운 냄새에 종종걸음쳐 들어가면

분명 더 큰 맛과 푸짐함으로 든든해질 겁니다.


그렇게 시는

우리를 먹입니다.


시는

어미요

먹이입니다.


어쩌면 모든 어미는 먹이일 겁니다.

분명 모든 먹이가 어미인 것입니다.

분명 먹고 먹이는 온세상 순환이 시입니다.


시는 ‘무엇’이 아니라

이 ‘어떠함’

먹고 사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먹고 사는 일은 언제나

간절히, 그러나 인내롭게

그 시-성(詩性)이 드러나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입니다.


이 아름다운 숨바꼭질에

인생이라는 유희(遊戱)에 끼어

즐겁게 노니십시오.


열심히 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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