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성에 관하여. 깨어서 할 일
현재성에 대한 오해의 중심에는 현실에 대한 집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란 지각한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으로만 우리-와-세계를 구성합니다. 다시 말해 아는 것만으로 아는 것을 구성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현재를 사는 것은 현실을 아는 것이 아니랍니다.
— 우리는 이로써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
현재를 사는 것은 현재를 느끼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모든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안다는 건 처음 우리가 안다는 걸 잘못 알고서, 사실상 모르고서 알던 것과 다르답니다.
느끼는 것을 아는 것은 오롯이 현재를 사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현재를 통째로 삽니다. 느끼고 압니다, 자유로우며 무엇도 우리를 얽매지 않고, 우리 또한 무엇도 얽어매지 않아요. 따라서 우리를, 우리-와-세계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우리는 사이진 존재로서 모든 사이를 구성하고 거닐어요.
현재는 그리하여 유일한 실재로서 영원을 드러냅니다.
영원도 이름이지만.
그 이름이 담-으려-는 것을 현재를 살아 안다-알아챈다, 이 말이예요.
그대가 깨어서 하는 일, 꿈꿀 수 있도록 차비할 첫 번째 일은
마치, 새장에서 나올 때 새가 하는 첫째 일이 ‘보는 것’이듯이
창살을 보아 새장에 갇혀 있음을 아는 것이듯이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그리고, 그러려면
현실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대의 지금이 그대를 가둡니다.
현재를 살아요.
오늘을 살면서 그대는 오늘이 되어요, 본래대로.
그대 본래진면목대로 살아요, 느껴요, 알아요.
현재하여요.
영원하여요.
나무에게
바람이
休
*[현재성에 관하여]라고 서두를 붙인 2013년의 글을 오늘을 위해 보태어 고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