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칼을 줄게

여러 자를 가져요

by 이제월


여러 자[척, 尺]를 갖추도록 합니다.

미세하게, 광활하게, 가볍게, 빡빡하게

자유자재로 필요에 맞게 쓸 수 있게

다양한 자를 갖추는 게 좋습니다.


이 일은 백 분의 일 밀리미터까지 세밀하게 맞추고

저 일은 오륙 센티미터쯤은 어긋나도 괜찮습니다.

바닥이 평평한가 기둥이 얼마나 똑바른가도

늘 같은 값을 요구하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임시로 천막을 칠 때와

수십 층 수백 층 빌딩을 세울 때 요구되는

경사의 정확도는 같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내 손으로 고치고

저 설비는 함부로 손대선 안 되고

품값을 치러서라도 전문가를 부르고 기다려야 합니다.


농담이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가 하면

이런 농담을 해도 되는 사이도 있고

해서는 탈이 날 사이도 있습니다.

이 관계에서는 힘들다 할 일이

저 관계에서는 괜찮다, 매우 좋다 대답할 일이 되기도 합니다.


고맙고 서운한 마음도 매우 뚜렷하고 달리 조작하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는 저절로 고마운 게 저기서는 저절로 서운합니다.


이때 각기 맞는 자를 고루 갖추고 있으면

코미디 영화는 웃으며 즐기고, 공포 영화는 비명도 지르면서 즐기고,

액션 영화는 쾌재를 부르며, 드라마에는 사색과 슬픔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로 모두를 바라보면

표정을 일그러뜨리거나 속이 메스꺼워 내내 발을 구르며 그만 보고 나갈까 고민할 것입니다. 마치고 속았다는 기분이 들거나 추천해 준 지인을 원망할 수도 있겠지요.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듣고, 왜들 안 오는 거야 노심초사하다 바보 취급만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각각에 맞는 자가 따로 있던 겁니다.


여러 자를 가지십시오. 여러 척도를, 스케일(scale)을 늘렸다 줄였다 하기를 착 갖추고 계십시오.

우리의 자유는 다 치우고 하나만 남긴 허허벌판에서 오지 않고, 그보다는

복잡하고 힘든 산길을 올라 정상에 내려다보는 복잡하고 찬란한 전부를 조망하며 얻는

활연대오(豁然大悟)이기 마련입니다. .


활연대오에 이르도록 활연개오(豁然開悟)하십시오.

활짝 열어 이 다름을 다 받아들이고

그대 안에 때를 기다리는 깨달음을 여십시오.


오늘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깨어날 것이고

태어난 것이 자랄 터인데.

그대는 그대라는 벗을 기다리며

더 많은 자를 자유자재로 쓰십시오.

그러다가 툭, 때에 맞게, 자리에 맞게, 일에 맞게, 사람에 맞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하는 자신을 빚어낼 것입니다.


자유에 이르는 자유의 과정을

잘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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