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애국에 대한 단상
아다시피 대한민국은 ‘국군의 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국군의 날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38선(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소련군과 미군이 각기 진주하며 상호 충돌을 방지하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삼아 만든 군사분계선. 한국전쟁 후에는 현재의 ‘휴전선’으로 대치됨)을 넘어서 북진한 것을 기념하여(그날이 1950년 10월 1일) 1956년에 제정한 국가기념일입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망라해 함께 기념하는 날이고, 단순히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국군 창설과 국토/국가 수호를 상징하는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각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대규모 열병식을 치르고 전투기의 에어쇼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보여주기식 열병식은 하지 않고, 독재국가일수록 권력을 과시하며 민간인 사이를 행진하는 군대의 위용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울에는 용산 국방부가 있는 곳에 ‘전쟁기념관’이 있어 군과 전쟁 관련하여 상시 전시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아, 이곳에서 전혀 다른 다양한 전시도 이루어진답니다.
군대의 문제는 참으로 민감한 문제입니다. 장병의 희생과 노고에 대한 감사와 긍지, 응원과 지원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 한편 언제든지 국방을 넘어서 파괴적 전쟁 범죄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 또한 안고 있습니다. 현대 국가는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현대’의 ‘국가’가 되어 행정과 치안, 주권 수호를 수행합니다만, 폭력의 독점 방식은 코스타리카처럼 군대를 설치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국은 침략전쟁과 동맹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자국을 방위하기 위해 상당한 강군을 보유하고 계속 훈련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 중인 국가로서 엄격하게는 ‘전쟁 중’에 있어 군대를 유지하고 훈련, 발전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평화’를 위한 ‘전쟁 억지력’에 필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무려 두 차례나 ‘성공한’ 군사 쿠데타가 있었고, 이 군사반란이 자행될 때, 군대는 국토 수호의 최전방인 휴전선 방어를 포기하고 이탈해 수도 서울에 진주해 총포를 겨누었습니다. 쿠데타 주역들이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군대의 존립 이유를 배신하면서 권력을 차지했다는 오명을 부정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시 비스 파켐 파라벨룸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저술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쓴 군사서 『군사학 개론』(Epitoma rei militaris)에 들어 있는 문장입니다. 원래 표현은 대략 “Igitur qui desiderat pacem, praeparet bellum”(“그러므로 평화를 바라는 자는 전쟁을 준비하라”)라고 합니다. 이 짧은 격언이 이후 간결한 형태인 <Si vis pacem, para bellum>으로 퍼진 것이지요.
그러나 권력을 위해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평화를 돕기보다 평화를 위한 잠재력을 갉아 먹고, 당장의 평화와 안녕도 해치는 일입니다. 잠시 무력으로 억압하여 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온 나라 또는 해당 지역이 부글부글 끓으며 폭발을 기다리게 만들지요. 한국의 역사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상당히 가까운 시기에 같은 시도가 재현되었고, 법적 심판이 채 종결되지 않고 진행중입니다만 이번에는 자랑스럽게도 민간인인 시민과 군인인 시민 들 모두가 군대의 참뜻을 알아 적극 및 소극 저항하여 군이 평화의 도구로 남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군의 존재 자체가 평화에 위협이라고 보고, 이러한 입장도 일리가 있는 의견이지만,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단 말입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폭군이 되는 날이 아니고, 군주정을 끝내고 공화정이 시작된 땅에서, 신분제가 폐지되고 만민이 평등한 세상에서 각 주체, 서로 상이한 주체들을 차례로 조명함에 있어 어린이에 더 주목하는 날일 뿐입니다. 어버이날도 그렇고, 학생의 날도 그렇고, 그밖에 우리가 무얼 기념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국군의 날 또한 ‘국군’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를 되새기는 자들은 외적에 저항하여 자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에 반하여 자국민을 억압하거나 학살하는 데 동원되길 저항합니다. 이 의미를 되새기는 자들은 갖가지 이상과 현실논리를 내세워 국경을 비우고 정부를 겨냥하는 데 반대합니다. 이 의미를 되새기는 자들은 주권자와 민의의 전당을 점령하고 전복하는 시도에 저항합니다. 군인도 군이라는 특수 조직의 일부이기 앞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민의 통제 아래, 민국(民國, 민주주의 공화국)의 기구로서 작동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국군은 큰 희생을 치렀을 뿐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가장 최근에 권력자와 더 큰 권력을 탐하는 자들에 무책임하게 끌려가는 대신 비록 몸은 마주섰지만 시민의 뜻과 자리에 나란히 서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런 군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잘 봐 줘도 80년대, 60년대로의 후진을, 아주 후진 후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스타일을 구기는 문제가 아니라 전쟁터도 아닌 일상의 생활공간이 자유와 목숨이 대롱대롱 매달린 위태롭고 불안한 곳으로 바뀌어 버리는 문제입니다.
애국(愛國).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요? 이건 무슨 일일까요? 사랑하는 대상은 분명하게 있는 걸까요? 그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그러나 다른 이들을 나와 똑같이 바라봄으로써 가장 큰 공공선을 향해 자기를 바꾸고, 자기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조차 피하지 않고 끌어안는 일이 아닐까요?
애국이 진짜가 되면, 그는 세상을 사랑하는 일도, 신을 사랑하는 일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류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영영 통하지 못할 말못하는 생명과 무생물에게까지도 여전히 이 ‘자아를 허물고, 자아를 확장하는’ 이중 나선을 확장해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완성할 때마다 둘러싼 더 넓은 세계와 마주치는 진정한 성장으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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