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시와 현실

이제 시는 — 루이스 글릭 시 「저녁 기도」 같이 읽기

by 이제월




Vespers

[In your extended absence, you permit me]



BY LOUISE GLÜCK


In your extended absence, you permit me

use of earth, anticipating

some return on investment. I must report

failure in my assignment, principally

regarding the tomato plants.

I think I should not be encouraged to grow

tomatoes. Or, if I am, you should withhold

the heavy rains, the cold nights that come

so often here, while other regions get

twelve weeks of summer. All this

belongs to you: on the other hand,

I planted the seeds, I watched the first shoots

like wings tearing the soil, and it was my heart

broken by the blight, the black spot so quickly

multiplying in the rows. I doubt

you have a heart, in our understanding of

that term. You who do not discriminate

between the dead and the living, who are, in consequence,

immune to foreshadowing, you may not know

how much terror we bear, the spotted leaf,

the red leaves of the maple falling

even in August, in early darkness: I am responsible

for these vines.




Copyright Credit: Louise Glück, “Vespers ["In your extended absence, you permit me"]” from The Wild Iris. Copyright ©1992 by Louise Glück. Reprinted by permission of HarperCollins Publishers Inc.

Source: The Wild Iris (The Ecco Press, 1992)




저녁 기도

Vespers



당신의 길어진 부재 안에서, 당신은 제가

땅을 사용하는 걸 허락하시네요, 투자에 대한

어떤 보상을 기대하시면, 저는 보고해야 해요,

저의 숙제가 실패했다고, 주로

토마토 모종에 관해서인데.

토마토를 키우라고 저를 격려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행여 그러실 거면, 당신은

이곳에 그토록 자주 찾아오는 그 차가운 밤도,

그 세찬 비도 주시면 안 돼요, 다른 지역들은

여름이 열두 주인데 말예요,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속해 있어요: 한편,

저는 씨앗들을 심었어요, 흙을 찢는 날개 같은

그 첫 새싹들을 봤어요, 열을 지어 그처럼 빨리

늘어나는 그 까만 점은, 병충해로 부서진

저의 가슴이었어요. 당신에게 심장이

있는지, 우리가 그 단어를 이해하는 대로라면,

그게 저는 의문이에요. 죽은 것과 산 것을

구별하지 않는 당신, 그래서, 조짐에는 끄떡도 않는 당신,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공포를 견디고 있는지, 반점 돋은 이파리,

팔월, 이른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단풍나무 붉은 이파리들: 나는

이 덩굴들에 책임이 있는 걸요.





— 루이즈 글릭 지음, 『야생 붓꽃』, 정은귀 옮김, (주)SIGONGSA 펴냄, 2022년, 60-61쪽.




시공사를 통해 『야생 붓꽃』이라는 이름으로 『The Wild Iris』의 번역본을 낸 정은귀 번역가는 「옮긴이의 말」에서 “20세기 내내 미국의 시단은 서정시에 우호적인 편이 아니었다”(별책 32쪽)고 환기합니다. 그이가 옮긴 것처럼 철학자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To write poetry after Auschwitz is barbaric.)(별책 32쪽)이라고까지 말하였는데, 이는 시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그때 그 시절 그런 시들에 대한 반대입니다. 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와 8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에서 사실주의 경향이 강했습니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이 사실을 고발하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입니다. 서정시가 설 자리는 아주 좁은 문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 양편이 낭떠러지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이즈 글릭은 가장 내밀하면서도 가장 사회적인 시, 아니, 초사회적인 시를 썼습니다. 이 시 안에서는 물질과 현실뿐 아니라 영혼들이, 이상들이, 올바른 정신들이 거닐읍니다. 글릭(글뤽이라고 쓰고 싶지만, 기왕 번역본을 빌려 쓴 이상 책에서 사용한 표기를 따릅니다)은 식물이 사람에게 말하고, 사람이 신에게 말하고, 신이 자신에게 말하는 삼각형을 수놓습니다.

이렇게 명망 있는 작가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석은 정말 많기 때문에 거기에 보태는 아둔한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저는 매력적인 전편 중 눈길 가는 대로 한 편을 골라서 다시 읽고, 되읽은 것을 ‘같이 읽기’하려는 것뿐입니다.


글릭의 시 「저녁 기도」(Vespers)는 영문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부제가 달렸는데, 실은 따로 부제가 있던 게 아니라, 시인이 같은 제목의 여러 편을 써서 구분할 수 있도록 시의 첫 행을 반복해서 빌어다 붙인 것입니다. 이 「저녁 기도」(Vespers)는 “당신의 길어진 부재 안에서”로 도입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가”라고 말함으로써 말하고 있는 자는 ‘나’이지만, 문제가 되는 행위의 주체는 ‘당신’ — 대타자(大他者)로서의 ‘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화자와 행위자의 불일치, 이 시를 비롯해서 이 시집 전반에서 이런 묘한 어긋남이 독특한 흐름을 만들고, 심지어 반복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뜻을 전달합니다. 다만 지금은 그렇게 확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행위자인 신은 화자인 시인 — ‘나’에게 “땅을 사용하는 걸 허락”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것을 “투자”라고 말합니다. 이 투자에 대해 보상을 바란다면, 화자인 나는 신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고의 내용은 “숙제”의 “실패”입니다. 시집 중간에 실린 시이기 때문에 책을 펼쳐든 독자는 그렇게 쫄지 않겠지만, 방금 이 시만을 떼엇 읽은 사람은 조금 긴장할 수 있습니다. 투자와 거기에 대한 실패의 보고. 그러나 “주로”라고 말하고서 — 원문은 “principally”이어서 직역하면 ‘맨먼저’나 ‘으뜸가게’라고 말할 수도 있고, ‘주로’ ’본질적으로’ ‘결국에는’ 등으로 자주 옮깁니다 — “토마토 모종”이 등장해서는 긴장을 풀어줍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내내 시는 이 토마토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중대한지, 얼마나 무겁고 높은지를 충분히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곳의 현실이 어떠한지, 이곳과 다른 곳은 어떻게 다른지, 그곳들이 모두 똑같이 “이 모든 것이/당신에게 속해 있어요”라고 항의할 차비를 합니다. 항의할 초석을 다지는 겁니다, 사실로서. 이 명백한 ‘당신/신’의 사실에 더해, 화자인 시인/나는 내가 한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화자는 모든 행위의 근원에게로 회귀하는 자신의 행위를 기술합니다. 화자는 행위자가 됩니다. 그래서 행위자 대 행위자로서, 이 위대한 일의성(一意性, univocitas)에 근거해 일찍이 키에르케고어가 예고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당당하게, 대등하게 발언합니다. 자신의 희생, “부서진/저의 가슴”을 자격 삼아, “당신에게/심장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당신은 모르실 거”라고 신의 무지와 무능마저 제기합니다. 이럴 수 있는 건 시적화자인 나는 이미 “우리”여서 “우리가 얼마나/끔찍한 공포를 견디고 있는지” 탄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대미는 그래서 흔하디 흔한 밭의 풍경, 누가 가꾸든 야생의 것이든 똑같이 볼 수 있는 그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겪고 견디고 있는 “끔찍한 공포”를 열거합니다. “반점 돋은 이파리,/팔월, 이른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단풍나무 붉은 이파리들:” 그러면서 시인은 부언합니다. “나는/이 덩굴들에 책임이 있는 걸요.”

책임이 있는 자가 책임을 지려하기 때문에 신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신과 마주앉아 대거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픔을 겪고, 공포를 겪고, 가슴이 부서진 자요, 이 모든 부서짐을 자기 것으로 삼은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마지막 시행은, 당연하게도 신의 책임을 묻고 촉구하는 글이 입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가 갈 길은 무엇인가? 아도르노의 어리석은 혹은 현명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주어졌습니다. 시는 절대자와 대화합니다. 영혼의 언어로서 시는, 시인은, 서정시는 신에게 말합니다. 신이 들을 수밖에 없도록. 그렇지 않은 서정시는, 글쎄요, 아도르노에게 맞장구쳐 주고 싶진 않지만 역시 그의 말마따나 이제 “야만”입니다.

쿼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제는 "시여, 어디로 가는가" 물어야 합니다.

대답해야 합니다.


그대는 세계에 대해 말하십시오.

그대가 책임지는 세상에 대해 말하십시오.

그대가 책임을 느끼고, 자기 아픔으로 같이 부서지는 그것, 그것들 전부에 대해서

신에게 당당히 항의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요구하십시오.

다른 건 아닙니다.

그땐 차라리 침묵할 것입니다. 침묵하며 아픈 목소리들을 경청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시를 길어올릴 수 있을 터이니.







*루이즈 글릭 | 미국의 시인, 수필가. 1943년 4월 22일 미국 뉴욕 뉴욕에서 출생.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2015년 국가 인문 훈장 수여. 2003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계관 시인.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 1993년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수여, 이후 열네 권의 시집 발표, 에세이와 시론을 담은 두 권의 책을 지음.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2023년 10월 13일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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