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담. 로봇 이야기? — 인류에 대한 역설계
김보영 작가의 연작 소설 『종의 기원담』(이작, 2023)에는
2005년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통해 발표한 「종의 기원」(이후 ‘종의 기원담’으로 개명)과
「종의 기원담: 그 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2005년에 북토피아 전자본으로, 2010년에 해피리딩 판본도 나옴)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다
마침내 두 편을 묶어 연작 소설집을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작가가 ‘아, 아직 못다한 게 있어. 하나 더 써야겠다’하고 써서 보탠 「종의 기원담: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가 신작으로 수록되면서 완결편으로 기능합니다.
이 소설은 한편으로는 ‘종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학이자, 추리소설, ‘신학’이자 ‘심리학’, ‘사회학’이자 ‘모험활극’이며 무엇보다 평면이 아닌 입체로 펼쳐진 상상의 파노라마입니다. 어떤 상상인가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끝이 닿은 뇌신경뉴런 같습니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케이’라는 로봇을 가운데 두고서 그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가교를 놓고, 스스로 새겨진 본성을 거슬러 어떤 확신에 따라 행동하고, 다시금 그 확신을 넘어선 냉정한 이성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까지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마지막 단계를 빼고는 [소설적으로] ‘있었거나’ ‘어쩌면 있었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말하지만, 마지막 단계만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구분합니다.
앞선 두 이야기는 인류가 그동안 해왔고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한꺼번에 쓸어담아 조망하게 해줍니다만, 마지막 이야기만큼은 인류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은, 그랬으면 좋겠지만……하며 말끝을 흐리게 할 전개를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의 창작은 관찰과 성찰을 넘어서 강렬한 희망의 사투(死鬪)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싸움을 매우 즐겁게 하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그것이 무엇도 아껴 남겨둘 수 없는 혈투(血鬪)라는 점, 사력을 다해 겨루는 사고의 전장을 이루었으리라는 점은 변치 않는다 생각합니다. 작품이라는 결과는 인공의 것이기 때문에, 독자가 일종의 ‘역설계’(逆設計, reverse engineering, RE)가 가능합니다.
이 작품을 역설계하는 독자는 이 작품이 한 가지 측면에서만 고려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게 되고, 독자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측면이 다 달라 각자 읽고 모여서 이야길 나누면 ‘어쩌면 이렇게 다르게 읽었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느끼고 생각할까’ 놀라워할 겁니다.
그런데 작가가 이 모든 지점을 일일이 설계한다?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별로 인간적이지 않은 발상입니다. 그보다 작가는 로봇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상 ‘인간’에 대해 오래고 깊은 관찰을 해 온 것입니다. 관찰하고 성찰하고, 마침내 상상한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진지하여 어떤 것이 마침내 실제와 같이 생생한 모습을 갖출 때, 보이지 않는 기관과 혈류까지 갖출 때,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도 인간과 인간의 생, 인간사회의 전모를 투영할 수 있는 입체성을 갖게 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종의 기원담』은 그러한 실례로서 증거로 제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의 재미를 반감하는 걸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신나는 독서를 제가 ‘대신’ 할 수야 없지요. 그래서 줄거리며 구성, 인물,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입을 싹 닫으려고 합니다. 저는 닥치고 있을 테니, 서점에 가서,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찾아 읽기 바랍니다. 오가는 시간과 수고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겁니다.
이 이야기가 그렇듯, 다른 어느 이야기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바로 작가가 인간적이고, 독자도 인간적이라면 말입니다.
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