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시와 현실

버스 타자 — 성찬경 시인이 준 버스에 올라

by 이제월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성찬경 시인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길위를 달리는 두 대의 실물 버스

보다

훨씬 재미있다.

두 대의 그림자 버스의 모양이

(약간 흐린 날이라)

둥그스름하게 털옷을 두르고 있다.

내가 타고 있는 그림자 버스 창에

사람 머리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쯤 된다.

실물버스의 운전석 해가림이 청색 필름이라

논 위에 계속 청화무늬가 번진다.

그지없이 아름다운 꿈의 무늬다.

푸른 점박이 그림자 버스가

논을 마구 쓸고 가도

풀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두 대의 그림자 버스가

소리 하나 안내고

비닐집도 넘고 넘어

솔밭도 넘고 넘어

경쾌하게 달린다.

힘의 낭비가 영이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신동의 악보다.

착 붙어 논을 핥는다.

얼마나 맛있을까

전내기 진간장

반지르르 들기름에 꿀 흐르는 땅

논과 그림자 버스는

알몸과 알몸

납작한 밀착이다.

철저한 천착이다.

완벽한 이별이다.

흔적은 무구다.

나와 저 그림자는?

이 버스와 저 버스는?

플라톤?

두어라.

농밀한 사건이지만

시간 위를 미끄럼 타듯

형이상의 현상이다.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동화나라 두 대의 진짜 버스다.




ㅡㅡㅡㅡㅡㅡㅡ


이쪽에서 답 없을 때

저쪽에서 답을 구한다.

저쪽에 갚으려 하면 섭섭하다.

그짝 걸로 이짝 걸 갚아? 아서, 못해.

건너면서 한쪽에서 질량을 갖는 것이

이쪽에서는 무게가 영.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나 반대는 아니다.

논을 잠근 물 위로 버스가 달려서

논두렁 길 따라 버스가 달리지 않고

논두렁 길 따라 버스가 달려서만

논을 잠근 물 위로 버스가 달리지.

물론 둘은 서로를 그림자로 보고

두 대의 그림자 버스 사이 좋게 달려.

두 대의 그림자 버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제 그림자로 미루어 제 모습과 제 움직이는 꼴을 가늠하지만

둘이 서로 헷갈릴 뿐 바깥에선 환히 보이지

어느 것이 달리고 어느 것이 따라 달리는지

둘이 아무리 닮아도 길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와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는 다르지.

눈밝은 이는

아니, 단지 신실한 자는

놓치지 않고 바라봐 금세 알게 되지.

논 위를 달리는 그림자 버스는 일렁이고 끊어졌다 이어지지만

두 대의 실물 버스는 잠시도 끊어지지 않으니

우리는 끊어지지 않는 것을 진짜로 알아보고

끊어질수록 그림자구나, 더 그림자구나, 더더 그림자구나,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로구나 알 수 있지.


갚지 마라, 여기서는.

무엇이 그대를 구했건 여기서는 마땅치 않고 할 수가 없다.

무익한 욕심에 불사르지 마라.

그대는 우선 저쪽에 올라타라.

너머, 저승, 뭐라 부르든 형이하학의

아무것도 안 해도 던져진 만져지는 세상에서

만질 수 없는 세상을 조작하는

은혜로우나 엄정한 화엄 세상.

실로 가진 역량대로만 거짓없이 감응하는

천지간 한 점 티없는 세계에 들라.

그 세계를 숨 쉬고 그 세계의 몸을 가지라.

주워 들은 몇 마디가 아니라 그 발성과 그 호흡, 그 신진대사로

느끼고 생각하고 사실을 이루어라.

그러면 그냥 팔을 들면 공덕이고

눈을 돌리면 복덕이라

그대는 차고도 갚고도 넘치는 축복인 것.


무얼 하지 마라.

잘 있으라. 제대로 있으라.

존재는 반드시 작용하니

무얼 하다니! 있을 뿐.


두 쌍의 실물과 그림자

식별하고

버스 타라.

구경은 충분하지 않은가.






보탠 말 =기우 )


버스 타자!


올바른 세계에 자기를 두면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위가 어렵지 않다.

올바른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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