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이에게 | 물길

기다리는 게 일

by 이제월



사람은 계속해서 기다립니다.

인류의 역사를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여러 가지 답이 나올 테지만, 오늘은 ‘기다림’이라고 말해 보겠습니다. 기다림. 사람들은 자꾸만 기다립니다. 일단 무언가를 바라면,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란 정말 힘든 일이고, 그러면 자꾸 기다립니다. 누워서 입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도 하지만, 동구(東丘) 밖에 올라 언제 오시나 언제 오려나 기다리기도 합니다. 우편함을 보기도 하고, 이제는 자꾸만 휴대전화기를 들어 알람을 확인합니다. 1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새 문자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바람 맞은 게 분명한데도 혹시 몰라 기다리고, 주식이 오르길 기다리고, 나를 좋아해주기를 기다리기도 하며, 갑자기 재개발 승인이 나기를 바라기도 하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오해가 풀리기를, 내 신청이 승인 나기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집단은 비를 기다리고, 승전과 귀환 소식을 기다리며, 사면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풍작을 기다리고 풍어를 기다리며, 즐거운 노랫소리를 기다립니다. 화평을 맺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교류를 트겠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해방과 구원, 귀향과 자유를 염원합니다.

기다림이라는 게 기다릴 만해서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처지라도 또 그것을 더는 바랄 수 없는, 애초에 바라서는 안 될 것이었다 싶을지라도 바로 그것이 ‘기다리는’ 일이라면.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렇게 기다려온 세월 속에서 누군가는 타성에 젖었고, 누군가는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매 역사는 기다린 사람들의 것입니다.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우리는 기다리거나 기다린 이들의 후손이었거나 한 이들의 후손들입니다.

기다린다는 일 자체가 희망의 증거이고, 희망의 수행(修行)인 것입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일 기독성탄을 기다립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생일이야 본인부터 알지 못했을 테지만,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날을 골라 생일로 정했습니다. 그건 바로 태양신 미트라/미트야의 탄생축일, 동짓날입니다. 동지(冬至)는 밤이 가장 긴 날, 연중 해가 가장 짧은 날입니다. 이 말은 이 밤을 견디면 그때부터는 해가 점점 길어지고 왕성한 해의 기운이 대지를 왕성하게 하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도 두텁게 해 주리라는 뜻입니다. 중세에 역법(曆法)을 수정해 동지가 당겨지면서 성탄일이 동짓날로부터 사나흘 떨어졌지만, 본래는 동짓날이 성탄이고, 그로부터 팔일째 되는 날 유태의 풍습대로 아기를 성전에 바치며 ‘이름을 붙이면’(명명, 命名) 아기는 살덩어리에서 사회적 존재,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그 날이 새해 첫날 1월 1일이 됩니다.

성탄일은 그렇게 문화적 고려로 선택된 날짜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그렇게 기다리다가 예수를 맞이했고, 아직 예수가 구세주가 믿지 않는 유태인들은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영웅을 고대하고, 스크린 속에서는 부분적 구세주들이 ‘히어로’라 불리며 활약하고 있습니다. 만해 스님은 시인의 감성과 민족독립을 꿈꾸는 운동가의 열정으로 간절하게 간절하게 ‘님의 침묵’을 노래하며 ‘님’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의 행위는 얼핏 수동적이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약한 사람은 결코 하지 못하는 게 기다림입니다. 먼 데서 다가올 결과를 기다리느니 못 참고 뛰쳐나가는 게, 뭐라도 해 보려다가 악수(惡水)를 두고 마는 게 사람입니다. 기다린다는 건 지극히 ‘적극적’인 ‘수동태’입니다. Active Passivity.


이 형용 모순이 삶의 모습입니다.

삶은 이렇듯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정지해 있지 못합니다.

그 덕에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뭐,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야’죠.

기다리란 말이죠.

의로움이 이루어지기를.

그게 뭐 ‘나 가거든’ 이루어질지언정.

“그날이 오면” 기뻐 울고 웃으려던 이들이 다 가신 뒤에 광복(光復)이 온다 해도.

빛이 온다는데, 어둠을 견뎌야지요. 억세게, 끈질기게, 지독하게.


인간은 참으로 지독한 족속입니다.

인간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불완전을 더할나위없이 속속들이 뼈저리게 알고 있더라도

다시 또 희망하는 지독한 족속.


올 한 해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지독하게 사랑하십시오.


그대의 지독한 사랑을 응원합니다.

그것은 또한 그대가 ‘우리 가운데 하나’(one of us)라는 초대요 고백,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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