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사에서 전해지는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나는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허투루 하는 말, 빈말을 싫어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으리라. 그러다 보니 나는 노잼이었다. 유머러스한 면도 없는 편이었다.
사내아이들 틈에서 자란 나를 어른들은 고명딸이라고도 하고 양념 딸이라고도 불렀다. 집안에 여자 아이가 귀하다 보니 여자답게 곱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름답고 곱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지어주셨다. 아들들의 이름과 달리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할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유독 예뻐하셨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남성 중심이었기에 나는 이름이 너무 여성스럽다고 생각하여 내 이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한문 시간을 통해 나는 내 이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한자 이름을 노트에 적고 그 이름의 뜻을 새겨보라 하셨다. 덧붙여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는 한자 이름을 넣어 소개하면 동일한 이름이라 하더라도 구분하여 기억할 수 있어 좋다고 말씀하셨다.
회사나 상품 모두 이름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 네이밍(naming)은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 그 제품의 성격과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짓는다. 거기에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고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이름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닉네임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이름 짓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이름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께서 지어 주신다. 그 이름을 지을 때 부모님들의 마음은 자녀가 장성하여 풍족한 삶과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우리 오빠의 이름만 보아도 그렇다. 동사무소에서 호적 조사가 나왔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평소 당신이 마음에 두었던 이름을 손자에게 그대로 붙여 주셨다고 한다. 이유는 그 이름의 주인공이 부자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전쟁통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손자가 부자로 평탄한 삶을 살기 원하셨던 것이리라.
그런가 하면 내 친구의 이름은 친구 아버지께서 좋아하던 가수의 이름과 같다. 본래 호적에 올릴 예쁜 이름이 따로 있었지만, 딸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시던 날, 거나하게 술 한 잔을 하고 갔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친구 아버지께 물었다.
"호적에 올릴 따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음, 우리 딸 이름? 거 이미자. 이미자야."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가족들이 부르는 소리에
"네."
하고 달려가던 친구를 보며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했었다. 친구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억울해서 집에서라도 예쁜 이름을 듣고 싶어 가족들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호적에 이름을 고치는 절차가 복잡해서 가족들만 부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호적을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름처럼 살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오드리 헵번이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카톡 배경 사진으로 저장하여 가지고 다닌다. 그녀의 젊었을 때 모습은 작은 얼굴에 상큼함이 묻어나면서도 깨끗하고 풋풋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미지가 매력적이라 좋았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자연스러움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행함, 그녀의 주름살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의 모습처럼 나의 삶에서도 그런 아름답고 고운 모습들이 열매 맺어 가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내 이름의 뜻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인 듯하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젊었을 때와 조금씩 다르게 변해가겠지만, 그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벼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숙성된 아름다움을 가진 고운 여자로 살아가고 싶다. 넉넉한 마음이 묻어나는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닌 여자, 나의 이름에 걸맞게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여인으로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