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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앤박 Oct 29. 2022

내가 사랑한 신발

구두 수선


햇살이 좋아 빨래를 했다. 빨래거리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세탁망에 넣어 빨래를 돌린다. 세탁망 중에서 하나가 구멍이 나 있었다. 최근에는 바느질을 할 일이 좀처럼 없지만 그냥 두기에는 거리는 부분이라 꿰매기로 했다. 바늘에 실을 꿰어 세탁망을 꿰매기 시작했다.


집에는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오래된 재봉틀이 있다.

꼼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아버지께서 재봉틀을 잘 사용하셨다. 어찌 보면 재봉틀은 아버지 손에서 더 빛을 발했는지 모른다. 평소 아버지는 기기를 잘 다루셨다. 집안의 크고 작은 수리가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영락없이 새것으로 변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손은 맥가이버 손이었다. 집에 있는 재봉틀은 너무 오래되어 가끔 예쁜 천들을 망가뜨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재봉틀도 살살 달래가면서 잘 사용하셨다. 오직 아버지만이 최근까지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의 발은 칼발이다. 아버지는 내 발을 보시곤 엄마 발을 닮았다고 하셨다. 발볼이 좁고 기다란 모양이다. 하이힐을 신을 때면 사이즈를 고를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정 사이즈로 사면 얼마 가지 않아서 곧 헐렁거려 걸을 때마다 불편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평소 조금 끼는 사이즈를 골라 처음 신을 때 불편을 감수하기도 했다. 여름에도 앞뒤가 막힌 구두를 신었다. 맨발에 샌들을 신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후 샌들을 신으면 바람결에 먼지가 발가락에 끼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샌들을 신지 않게 되었다. 양말을 신고 신발을 착용하게 되면서 내 발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꿈치가 매끄럽고 깔끔하다. 발 모양새도 아직까지 눈으로 보기에 그리 흠잡을 곳이 없다.







오랜 세월 직장에 다녔기에 여러 켤레의 신발을 구비하고 착용했지만 자주 신는 구두는 따로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유독 애착이 가는 신발들이 있었다. 그런 구두는 몇 번을 수선해서 신었다.


출산휴가 후 복직한 곳이 명동지점이었다. 근처에 금강 구두, 에스콰이어, 랜드로버 등 유명 구두 브랜드가 즐비하게 명동에 있을 당시다. 지점에서만 신는 구두는 굽이 낮고 앞코가 둥근 모양의 발이 편한 분홍빛 구두였다. 보통은 검은색 구두를 사는데 어쩐 일인지 파스텔톤의 구두를 선택했다. 아마도 유니폼에 맞추어 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의 대부분을 은행 지점에서 지내다 보니 구두는 어느새 낡아 수선이 필요했다. 평상시 구두 굽을 갈기도 했지만 구두의 안창까지 낡아 교체가 필요했다. 브랜드 수선실로 구두수선을 부탁드렸다. 수선공께서 얼마나 잘 고쳐 주셨는지 새것처럼 변했다. 구두가 워낙 편안해서 두세 번 더 수선을 맡겼다. 수선공께서 세 번째가 되니 이제는 새것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 구두와 작별을 고하고 다른 구두를 신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애정이 가는 구두를 만나기는 어려웠다.


두 번째 신발은 캐주얼화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F사 제품의 신발이었다. 짙은 베이지색 가죽으로 되어 있어 어느 복장에도 잘 어울리고 편한 신발이었다. 당시 나는 명동지점을 떠나 프로젝트팀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복장이 자유로웠다. 이 신발은 봄여름 가을겨울 사계절을 신고 다녔다. 양말을 착용하였기에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남편은 신발이 많은데 꼭 그것만을 고집하느냐고 했지만 정장을 입지 않을 때는 그 신발만 신게 되었다. 해당 신발은 굽을 교체할 때 밑창 전체를 교체해야 했다. 끈을 묶는 신발이었지만 느슨하게 끈을 묶어 언제든지 신고 벗기가 편했다. 이렇게 애정 하던 신발은 급기야 밑창의 절반이 너덜거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보다 못한 남편은 나를 데리고 신발가게로 갔다. 비슷한 모양의 신발을 고르기 위해 애썼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나마 맘에 드는 신발을 골랐다. 신발을 사고 나올 때 남편은 가게에서 신고 온 신발을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시 밑창을 붙여 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그 신발이 생각난다.


세 번째 신발 역시 캐주얼화였다. 신발을 살 때면 항상 첫 번째 대상이 되는 R사 제품의 로퍼였다. 맨발로도 신을 수 있는 생고무 창으로 만들어진 구두다. 짙은 갈색의 로퍼는 나의 여름 최애 신발이었다. 발 사이즈도 작아 보이고 편하고 예쁜 신발이었다. 이 신발은 아예 밑창을 갈 수 없는 신발이었다. 평상시 맨발로 신을 신지 않는 내가 한 겨울을 제외하고 꾸준히 착용하고 즐겨 신던 신발이었다. 다른 신발과 마찬가지로 신발 밑창이 나갈 때까지 열심히 신고 다녔다.


네 번째 신발은 S사 트레킹화였다. 은퇴 후 구두를 벗고 매일 신고 다니던 신발이었다. 자줏빛의 조금 투박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면 발이 가장 편안해야 한다며 남편이 권한 신발이었다. 자주 신다 보니 처음의 투박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발을 편안하게 감싸주어 정장을 입지 않을 때마다 부담 없이 신고 다녔다. 등산은 물론 호수 공원을 산책할 때도 운동화 대신 이것을 착용했다. 그렇게 1년 365일 애정 하는 신발이 어느 날 정발산을 걷는데 기우뚱하면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밑창을 보니 뒤꿈치 부분이 많이 닳아 미끄럼 방지가 되지 않았다. 초겨울로 들어서는 때였기에 남편은 이러다가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며 다른 신발로 교체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후에도 자주 신고 다녔다. 평소 나의 습관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은 안되겠는지 나를 끌고 새로운 트레킹화를 사러 갔다. 나는 새로운 신발을 사고서도 이 신발을 버리지 못했다. 신지 않으면서도 정이 들어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한동안 계속 신발장에 보관되었던 신발은 지난여름 헌 옷들을 정리하여 아름다운 가게 매장에 기부할 때 태우는 비닐봉지에 싸여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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