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내에 감나무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얼마나 탐스러운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10월 초, 아파트 출입문에 <감 따기 행사>에 대한 진행 공고가 붙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외출하지 못했던 우리는 오랜만에 아침 산책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아파트 단지 내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본다.
'뭘 하는 거지?' 생각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매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10월에 열리는 <감 따기 행사>를 위해 장대 막대기를 준비했다. 바로 지난주 토요일이 그동안 기다렸던 <감 따기 행사> 일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이웃들이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감을 따고 있었다. 남편은 갑자기 감 따는 모습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하 주차장이 만차(滿車)여서 지상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는데 우리 차의 위치가 바로 감나무 밑에 있었던 것이다.
"아이쿠! 차에 감들이 떨어진다.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하며 차 쪽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차 앞 유리창으로 감이 떨어져 뭉개진 상황이었다. 남편은 산책을 가려던 것을 멈추고 급히 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놓았다. 지상에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웃들이 감 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아빠나 엄마의 손을 붙잡고 감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끌려 나온 아빠의 모습도 보였다. 어른들이 장대 막대기를 이용해서 감나무의 가지들을 끊어 아래로 떨어뜨리면 나무 아래 있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가방에 연신 감을 주워 담았다. 얼마나 신나게 감을 따는지 이보다 더 좋은 놀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랫층 아저씨가 장바구니 한가득 감을 따서 집으로 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일 년 동안 햇빛과 바람에 무럭무럭 자랐던 감나무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신나고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매년 10월에 열리는 <감 따기 행사>는 주민들이 일 년 동안 기다리는 가장 큰 행사다. 단지 앞 큰 공터에는 부녀회에서 준비한 전도 부치고 이웃들이 막걸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요란하게 행사를 치렀다. 행사가 끝나면 주민들은 자신들이 수고해서 수확한 감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한 번도 행사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이번 <감 따기 행사>도 어김없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오전에 행사가 끝났나 보다. 관리실 아저씨들께서 남은 정리를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낙엽들을 쓸어 담거나 장대 막대기를 거두어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웃 주민들이 이런 아저씨들의 수고에 깊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감을 참 좋아한다. 감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한다. 딱딱한 단감은 샐러드를 할 때 넣어 먹어도 좋다. 감을 잘 먹지 않는 남편과 아들에게 줄 때 그만이다. 감을 말린 곶감은 한창 좋아할 때는 혼자서 100개를 먹은 적도 있다. 상주가 고향이었던 동료는 곶감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출산 휴가 중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에서 직접 만든 곶감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로 아파 누워 있는 동안 나의 양식이 되었던 홍시! 덕분에 입맛을 되찾을 수 있었다.
10월 초부터 몸살 기운이 돌면서 근육통이 왔다. 밤새 끙끙 앓다가 일어나 밥을 먹으려고 해도 도통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약을 먹기 위해 겨우 먹었다. 남편은 당뇨가 있어서 코로나에 걸린 후 나보다 더 오랫동안 아플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먼저 털고 일어났다. 2주가 지나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자가격리가 해제되었지만, 나는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 어설프게 일어나 움직이려고 했더니 하루가 지나고 나서 나는 몸 져 누워 버렸다. 말을 조금하고 나면 그날은 어김없이 기침으로 잠을 설쳤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과 귀가 유난히 아팠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베란다 의자에 몸을 기대어 햇살을 맞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랑초를 바라보고 가끔 물을 주었다. 다행히 아들이 2주간의 휴가를 나와서 우리의 손발이 되어 주었고 복귀할 때쯤 남편은 회복되어갔다.
코로나로 목이 너무 아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배숙이 생각났다. 배를 깎아 생강과 꿀을 넣고 끓여 주셨던 것인데 왠지 그것을 먹으면 약보다도 목의 아픔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조금 기운을 차리자 집에 있던 배로 배숙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배만 넣고 끓여 먹었다. 조금 나은 듯했다. 그러다 마침 작년에 생강을 굵게 썰어 담가두었던 생강청이 눈에 들어왔다. 배를 끓이는 냄비에 생강청을 넣고 함께 삶았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배숙은 아픈 목을 풀어주고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약이 되었다. 조금 나아진 남편이 홍시를 사 왔다. 평소 감을 좋아하는 내가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홍시를 사 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홍시 세 개를 게 눈 감추듯이 먹었다. 조금 입맛이 돌고 기분도 좋아졌다. 홍시를 먹고 나니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 세 끼를 홍시와 과일을 먹으며 버텼다.
아들이 복귀하는 날이 다가왔다. 남편은 일찍 샤워를 하고 장어를 사러 파주에 갔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남편도 그랬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맛있게 장어를 구워 먹었다. 상추와 깻잎에 절인 생강을 곁들여 연하게 구워진 장어를 입에 넣는 모습을 보더니
"장어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이제 조금 살아나는 것 같다."
하며 남편이 웃는다. 아들도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 몸보신을 한 듯하다.
조금 일찍 복귀하는 아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남편은 장어도 먹었으니 바람도 쏘일 겸 같이 가자고 했다. 집에 있을까 생각했지만 차에서 잠을 자더라도 움직여보자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아들이 휴가 나온 동안 우리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썼다. 감염에 대한 염려도 있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아무래도 말을 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복귀할 때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음성 반응이었다. 아들은 코로나 양성이 나와야 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엄마가 뽀뽀해 줄까?"
웃으며 아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코로나로 너무 아팠기에 건강하게 제대할 수 있도록 조심하라며 기도해 주었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아들이 휴가 때 코로나 확진이 되었을까?' 생각했지만, 아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편히 쉴 수 있었다. 덕분에 좋아하는 홍시도 먹었으니 말이다.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변화와 탐스럽고 맛있는 감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에게로 와 달콤함을 전해주는 감!
네가 있어 나는 이 가을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