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여행의 목적으로 어딘가에 방문할 때 기준이 아주 크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문화시설을 갖춘 곳을 향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살면서 직접 가보지 않아도 지역명으로 무수히 들어봤을 곳들로 가게 된다. 그래서 네비를 끄고 국도를 다닌다. 고속도로가 생기며 이동인구가 줄어버린 오래된 길들을 매 계절 새벽 마감이 끝나면 달렸다. 표지판을 보고 이름이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평생 모르고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숨은 공간들이 펼쳐진다. 물론 첫차도 그렇게 일 년에 십만 킬로를 넘게 타고 장렬히 폐차했지만.
이제 창문을 모두 열고 달릴 수 있는 계절이 끝나간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새벽 국도는 늘 급격한 기온차로 짙은 안개가 낀다.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날 것 같은 최근 3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안개가 걷히고 만났던 풍경들 같이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각각의 색으로 빛났던 예쁜 풍경들 같은 내년이 오면 좋겠다. 입버릇처럼 늘 말하듯 거창하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 한 끼 커피 한 잔 그리고 유일한 취미인 새벽 세차를 유지하는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