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절정이 다가올 무렵
매해 그랬듯 나는 가을을 먼저 기다렸다.
두 번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굶주림은
불길한 예상대로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이별의 아픔처럼 수십 번을 반복해도
적응되지 않는 긴 터널
터널의 입구가 다가올수록
이번에도 어둠에 조금 익숙해질 때 즈음
빛을 볼 수 있겠지 라는 나의 기대는 처참히 부서졌다.
유난히 긴 터널의 어딘가에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채 나는 오래도록 펼치지 않은
노트를 펴고 그림을 그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직함과 성실함만이
금전적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아버렸다 해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인지하려는 행위이기보단
그저 이 고통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때워보려는 심산이었다.
선을 그어갈수록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울컥함이 잦아졌지만
속 시원하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 수도 없었다.
하루는 선반에 꽂혀있던 읽다만 책들을 끄집어냈다
감옥에서 죄수들이 그러하듯
며칠을 침대에 누워 책만 읽었다.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이 원하면 언제든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이 감옥은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지하를 지상으로 이어주는 짧은 계단을 오르면
여느 때처럼 눈부신 햇살과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이야기 소리가 가득했다.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창문이 없는 작은 지하방 벽 곳곳에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잡지에서 오려 붙여놓았다.
그 작은 종이 속에서 오는 공간감만이
숨이 멎을 정도의 답답함을 희석시켜 주는 유일함이었다.
내가 어떤 걸 잘못한 것인지 수천번 생각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식상한 표현을 보며
이곳에서 물장구치고 발버둥 치는 수없이 많은 이들을 생각했지만
이 시궁창조차 가만히 적응하다 보면 깊이가 나뉘어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정지된 이후 가까운 사람 몇에게 돈을 빌렸다.
이렇게 된 상황을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분명 끝이 나야 하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음식의 차가움이 한겨울 온도보다 더하게 느껴져
마지막 남았던 이만 원 중 팔천 원을 집 근처 국밥집에서 쓰기로 했다.
깊은 상처를 소독제로 닦아내듯
국밥의 뜨거움은 명치끝 어딘가 자리 잡은 응어리를 조금 녹여주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얼굴을 드는 것이 힘들어졌다.
누군가 나를 신경 쓰는 것도 아님에도 나는 초점이 흔들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재떨이에 꽂아놓은 담배꽁초를 유심히 바라보다
조금 길어 보이는 녀석들 몇 개를 휴지 위에 꺼내놓고
드라이기로 말려보았다.
다 말라갔다 생각하고 한 모금을 빨아드리는 순간
필터 안에 고여있던 담배잿물이 입안으로 들이찼다.
시간은 거짓말처럼 흘러갔다.
연락을 준다던 클라이언트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내가 기다릴 수 있는 건 그들의 연락뿐이었다.
누군가에겐 이해되지 않을 이 상황을 온전히 내 힘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그림을 그려 돈을 받는 것뿐이었다.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짧은 카톡을 남긴다.
전화를 받고 그들의 상황을 듣고 그들이 돕고 싶은 내용들을
이해해 본다.
하지만 결론은 기다림 뿐이다.
너무 좋아하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
오늘은 마침 비가 온다
부족하지 않게 빗줄기가 굵어서 기분이 좋다.
피에로 가면을 사야지라고 생각했다.
이번의 이 긴 터널이 끝나면
나는 또다시 웃으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모든 게 내가 가난하게 태어나 내가 이 직업을 택하여 벌어진 일인데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어떤 감정도 남겨지게 하기 싫었다.
빌렸던 돈을 갚고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말하고
원래 없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전에 속 시원히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질 않는다.
내일은 연락이 오겠지 라며 일부러 일찍 잠을 청했었다.
깨어있는 이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잠을 자는 시간만이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점점 지쳐간다. 이젠 자고 일어나도 어떤 연락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일까.
희망고문의 직업이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순간 화가 나 모든 걸 집어던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