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쌓아둔 이병률, 김석원의 책을 다시 펼쳐 들고
녹은 얼음과 섞여 미지근 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커피를 홀짝이며 이쪽으로 다시 이쪽으로 뒹굴뒹굴.
볼륨을 작게 해 놓은 스피커에선 언니네 이발관이 흐르고
그러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희미하게 꿈속에서 나타난
예쁜 파란색을 그려보려 새벽 세시가 넘는 시간까지
그림 노트를 빼곡히.
그리고 발가락으로 벽을 툭 치며
뒤로 스르르 밀려나는 의자에 기대어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면서
내일은 또 뭐 그릴까
생각하며 행복해하던 시간을 조만간 되찾아야지.
행복하지 않은 몇 달은 수십 년의 지옥 같다.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지옥엘 가면
운전할 때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변경을 하는 사람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우측보행을 하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인다.
프리랜서의 가장 좋은 점은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는 시간을 최대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