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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5

by Noblue

한여름 홍콩을 넘어선듯한

습하고 비가 쏟아지는 수요일 출근시간


서울 지하철 9호선은 여느 때처럼 사람이 가득하고,

또 여느 때처럼 어딘가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할머니가 눌러 담아주신 고봉밥마냥 꾹꾹 몸을

쑤셔 넣은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

젊은 여성승객 뒤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려는

50대 중반 아저씨의 모습.


역시나 그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왜 몸을 밀치냐는 여성의 말에

다짜고짜 젊은년이 어디서 라고 말문을 트는

아저씨와의 1라운드는 싸움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 출입문 닫습니다 '라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끝나는 듯했다.


잠시 일어난 소란에 집중했던 사람들이 다시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떨구던 찰나,

그대로 출발하는 줄만 알았던 지하철의 스크린도어가

다시 열리며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화를 언어로 충분히 쏟아내지 못했던 아저씨의

공격이 시작되며 그렇게 둘은 얼굴이 닿을 거리에서

욕설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흥분을 못 이기고 입에서

나참, 에혀 라는 단어만 뱉던 아저씨에게

' 평생 그러고 살아라 '라는 어퍼컷을 날리는 여성의

마무리 공격과 함께 출입문이 다시 닫히고

경기를 조용히 관람하던 승객 모두가 어깨를 살짝

떨구며 ' 여성이 결국 이겼군...'이라고 생각하는 듯

느껴졌을 그때.


' 열차 출발합니다,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세요.'


라는 음성과 함께 스크린도어가 다시 열렸다.


3라운드 시작.

이제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둘은 끝까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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