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인의 밥상,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그 외에도 음식을 주제로 한 여러 여행기들.
아빠가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은 주로 음식에 먼저 초점을 두고, 그 음식과 관련된 배경과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빠는 여행을 갈 때 엄마와 딸 두 명의 여행지를 듣고 그 여행지에 맞춰 식당과 장소를 짜는 편이셨다.
먼저 어디를 가자! 하고 말씀하진 않으셔서 보통 그렇게 진행됐다.
그런데 먹방과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 애정을 가지는 날이 많아지던 어느 날.
“찜닭을 먹게 안동으로 가볼까?”라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가 먼저 말씀해 주신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좀 놀랐는데,
처음으로 음식을 중점으로 두고 여행지가 정해지다니!
여행의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경북 안동시 서부동에 있는 안동찜닭 골목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먹자 거리와 시장이 있어 주차할 곳이 걱정이었는데, 우려와 달리 공영주차장을 포함해 시장 주변으로 주차공간이 많이 있어 여유롭게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아빠가 인터넷 서핑을 통해 결정했던 식당에 들어왔다.
가게가 깔끔하고 식사시간을 살짝 비껴가서 그런지 손님이 많이 없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벽이 아닌 통창으로 되어 있어 시장 내부의 모습을 보며 먹을 수 있어 재밌었다.
찜닭은 한참 대학교를 주변으로 유행이 돌아서 그런지 학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과연 안동찜닭은 어떤 점에 차별을 뒀길래 이렇게 유명해진 건지 궁금했다.
한 입 먹어보고 바로 다른 점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찜닭은 양념 맛이 기억에 많이 남는 방향이었다면,
이번에 먹어본 안동찜닭은 재료 자체의 맛과 식감에 더 신경 썼다는 인상을 받았다.
닭이 신선해서인지 특유의 고기 냄새가 없고, 부드럽고 촉촉했다. 당근과 감자도 각자의 적당한 식감들을 유지했고 당면 역시 식사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많이 불지 않고 맛있었다. 양념 자체가 다른 찜닭에 비해 크게 다른 건 없지만 찜닭에서 ‘닭’에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아 다 먹고 나서 깔끔한 식사를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아 소화시키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안동구 시장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민속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착해 보니 안동시립민속박물관과 민속촌, 월영교까지 구경할 곳이 꽤 있어 주차장이 굉장히 넓었다. 주차장 안 광장 휴게소 별관 전시실에 작품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유화 작품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비교적 작은 크기의 민속촌이었지만 자세한 안내글과 잘 구성된 정원이 예쁜 곳이었다.
한눈에 보이는 예쁜 정원과 함께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오르막길 옆에 다양한 양식의 초가집과 기와집 몇 채가 있었다. 그리고 오르막을 다 오르면 보이는 입구에 공원과 리조트로 바뀐 기와집 몇 채. 신식 리모델링한 북카페와 식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도서관도 있다고 하는데. 전통적인 느낌으로 규모가 큰 민속촌이 아니라 데이트 코스나 아이들 수업, 또는 한옥 숙소에서 쉬고 싶은 분들이 오기 좋은 분위기였다.
민속촌 입구로 내려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는 월영교로 향했다.
따뜻한 햇살에 겨울이지만 그렇게 춥지 않았다.
‘맞아! 이곳을 배경으로 노래를 불렀지!’
안동 월영교는 가수 소향의 팬인 나에게 기억으로 남은 곳 중 하나였다.
버스킹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인 ‘비긴어게인’에서 소향이 월영교를 배경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달빛 가득한 야경이 기억에 확실히 남아 비록 낮에 갔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반짝이는 야경도 예뻤지만 햇살이 가득 비쳐 반짝이는 낙동강을 볼 수 있는 낮도 고즈넉하니 좋았다.
겨울은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아직 노을이 지지 않고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던 차였다.
내가 커피가 먹고 싶어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가까운 카페에 잠시 들르자고 하셨다. 그래서 급하게 카페를 찾아보는데 가까운 곳에 재밌는 곳이 있어 가게 되었다.
세계물포럼기념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앞에 안동댐이 있었는데 동생이 댐을 좋아해 한참이고 댐을 바라봤다.
센터엔 ‘물’을 주제로 한 여러 정보와 조각 등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다. 열려있는 것 같았지만 노을이 지기 전 카페만 잠시 들르기로 했던 터라 아쉽게도 전시를 볼 순 없었다.
카페는 위에서 보면 나뭇잎 모양인 재밌는 건물이었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통창으로 되어있어, 앞에는 댐을 배경으로 볼 수 있고 뒤는 호수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큰 안동호를 배경으로 볼 수 있어 예뻤다. 커피 맛도 좋았다. 댐을 바라보는 쪽엔 다른 손님들이 있어 우리 가족은 안동호를 배경으로 앉아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는데 평화로운 느낌이 참 좋았다.
카페 바로 옆에 작은 언덕과 정자가 있었다. 궁금해서 혼자 잠시 올라가 봤다. 정자에 올라갈 때쯤 노을이 지기 시작해 분홍빛으로 물들여져 가는 호수와 댐을 보는데 정말 예뻐서 여유만 있다면 오래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노을이 지기 전 안동을 벗어나진 못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하나 둘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야경의 월영교도 멀리서나마 보였다. 찜닭으로 시작된 하루 여행이 생각보다 더 알차고 재밌어 다음에도 음식을 주제로 삼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시간과 계절 : 2023년 겨울
* 장소 : 안동영가찜닭(안동찜닭 골목), 안동민속촌, 월영교, 세계 물포럼 기념센터, 전망카페 FFICK,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