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쉬운 가을이었다.
온통 붉고 노란 가을을 보고 싶어 가족 모두 비교적 여러 산과 나무를 찾아다녔는데 매번 실패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맘때쯤 가을 산이 예쁘다는 엄마의 말씀에 이젠 정말 예쁜 가을 나무를 볼 수 있을 거야! 하며 장태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차장에 들어설 때부터 차가 굉장히 많았다.
때마침 가시는 분이 있어서 편하게 주차를 한 후, 입구로 향했다.
추위를 덜 타는 편이라 가볍게 맨투맨과 청바지만 입고 왔는데 날이 쌀쌀했다.
산에 살고 있어 이 정도면 되겠거니 했는데 낭패였다.
겉옷을 입지 않은 건 나뿐이었다. 이럴 수가.
그래도 다행히 드디어 가을빛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작년같이 온통 다 물들인 건 아니고 여전히 초록색 나무들도 많았지만
조금은 차분해진 올리브색과 중간중간 완전히 붉고 노랗게 된 나무들을 보며 행복해졌다.
장태산을 처음 왔는데 생각보다 더 구성이 좋았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작은 화원이 있다. 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자세히 보니, 가을이라 역시 색색의 국화꽃이 보였다. 국화를 제외하곤 다른 계절 꽃이 많아 보여, 봄과 여름에 오면 더 예쁠 것 같았다.
메타세쿼이아로 가득한 곳이어서 그런지 느낌이 달랐다.
그림자가 길고 하늘이 잘 안보일정도로 높은 나무 사이를 걷고 있자니
어떻게 보면 답답할 것 같으면서 동시에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그 점이 메타세쿼이아 숲의 매력으로 느껴졌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나무들을 보자니 주황빛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무만 높은 게 아니었다.
숲속어드벤처라는 곳이 보였다.
어드벤처 입구에서 조금 걷다 보면 스카이웨이가 나오는데, 나무의 절반 높이를 옆에 두고 걷게 된다. 나무가 높다는 걸 알고서 걷다 보니 생각보다 더 높게 느껴졌다. 나무 밑동뿐만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 나무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스카이웨이를 좀 더 걷다 보면 전망대가 나와 어느 순간 그 높은 나무 위를 걷게 된다.
걷다 보니 좀 어지러웠다. 전망대 모양이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가는 구조라 어지러운 걸까 생각하던 차에 몸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많아지니 더 흔들리는 것 같아 안내문이 있나 찾아보니, 기둥에 적혀있었다. 흔들리는 게 맞다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흔들려 어떤 분들은 놀라는 소리를 내셨다.
맨 꼭대기에 도착했다.
사방이 트여있는 곳에서 나무들을 보니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좋았다.
바람이 시원했다.
스카이웨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출렁다리가 있었는데, 출렁다리 모양이 자세히 보니 메타세쿼이아 모양이었다. 디자인이 깔끔하면서도 주변 나무들과 잘 어울리게 되어있어 동생과 함께 보며 감탄했다.
쭉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집으로 가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쯤 부모님께 숲으로 둘러 쌓인 쉼터에서 간식을 먹고 앉아있고 싶다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 좋다고 하셔서 신난 마음으로 매점에 갔다. 고등학생 때나 혹은 대학 연수 때 이런 공간이 있으면 꼭 간식을 사서 친구들과 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가족들과도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매점 이름이 ‘시가 있는 구멍가게’였는데 가게 앞에 정말 시가 많이 적혀 있었다. 핫초코와 따뜻한 어묵을 샀다. 어묵은 국물이 흘릴 수 있어 가게 옆 테이블에서 먹고, 핫초코와 배고플까 봐 가져왔던 작은 빵 하나는 숲에 있는 쉼터에서 먹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매점 주변을 계속 돌아다녔다. 부지런히 시가 있는 곳과 테이블 아래를 돌아다니는 데 정말 귀여웠다. 숨을 곳이 많고 날이 좋아 즐거워 보였다.)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우리 가족이 앉은 뒤 얼마 되지 않아 테이블이 꽉 차 타이밍이 좋았다. 친구, 연인, 가족 할 것 없이 평화롭고 즐거운 모습에 사람들을 보니 행복했다. 나무의 끝을 보기 위해 하늘을 좀 바라보다 다시 따뜻한 핫초코를 한 입 마시니 몸과 마음이 나른해졌다.
그렇게 한 참을 쉬다 해가 지기 시작해 천천히 다시 입구로 향했다.
생각보다 더 평화로운 걸음이었다.
가을빛 나무를 가득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올리브색으로 떨어지는 잎들 사이로 또 다른 가을을 느껴 기쁘고 감사한 하루였다.
* 시간과 계절 : 2023년 가을
* 장소 :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