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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 Jul 01. 2024

2021년 봄, 순천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가족과 함께 갔었다. 

박람회가 반년 동안 진행되어 원하는 날을 여유롭게 정할 수 있어 좋았다.      

크기가 크더라도 반나절이면 여유롭게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너무나 큰 규모에 다른 나라 정원은 다 보고, 정작 한국정원은 폐장시간이 되어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예 못 볼 뻔했는데 당시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이 한국정원 앞에서 아쉬운 표정을 하며 바라보고 있자 직원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한 바퀴 쭉 돌고 오라는 말씀에 정말 급하게 뛰듯 돌고 온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 봄 어느 날, 가족 모두 순천에 들를 일이 있어 겸사겸사 오랜만에 순천만국가정원을 찾았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분명 봄인데 날이 정말 더웠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날이 습하듯 더워 마스크를 끼며 다니면 정말 힘들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정말 더웠다. 식물들은 습하고 따뜻해 좋은 날씨였지만 우리 가족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손부채질을 하며 입구부터 힘든 모습을 보였다.      


햇살도 따사로워 선크림까지 야무지게 발랐다. 이번엔 역으로 한국정원부터 보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나오면 바로 순천만국가정원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담당하는 봉화언덕이 있다.

그 봉화언덕을 끼고 오른쪽으로 걸은 후, 큰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한국정원으로 갈 수 있는 ‘꿈의 다리’가 나온다. 동천을 건너기 위한 다리인데, 세계 어린이들의 그림을 가득 전시한 컨테이너로 되어있어 그늘이 져 비교적 시원하게 건널 수 있어 좋았다. 그림이 타일 같은 모습으로 가득해 천천히 구경하며 걷는 재미도 있었다.    



한국정원에 도착했다.

궁궐의 일부를 가져와 그대로 전시한 것 같은 한국정원은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란이 많아 기뻤다. 모란의 꽃잎이 꼭 한복 치마 같은 느낌이 있어 화려하면서 단정한 느낌이 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데 역시나 한국정원에 잘 어울렸다. 우리 집 화단에는 진한 자주색 모란만 있는데 노란색,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한 색의 모란이 있어 열심히 눈에 담았다.     


2013년에 봤던 모습과 가장 다른 점은 한국정원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엄청나게 풍성해졌다는 점이었다. 

특히 지붕의 기와 위로 자란 덩굴 때문에 언 듯 볼 때 고양이 귀처럼 보이는 부분이 귀여웠다.


한국정원 바로 옆에 길이 있는지 몰랐는데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전망지가 나왔다.

수목원 전망지가 있는지 몰랐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곳이 가장 인상 깊은 곳이 되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 올라서니 국가정원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산과 도시의 건물들 그리고 언덕에 가득한 노란 꽃까지 평화롭고 예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언덕에 사람이 없어 잠시 마스크를 벗고 바람을 타고 오는 꽃과 풀 향기를 맡으니 더욱더 좋았다.



꿈의 다리를 다시 건너 세계전통정원 구경을 시작했다.

중국정원과 프랑스 정원으로 시작해 큰 반원을 그리며 여러 정원들을 감상할 수 있는 동선이었다. 

5월에 많이 피는 꽃으로 구성되어 있었는지 유독 네덜란드 정원에 사람이 많았다. 

그냥 지나치기엔 돌아가는 푸른색 풍차가 시선을 확 끌었다.

화려한 색감과 무늬를 좋아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멕시코 정원과 스페인 정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조형과 건물의 타일에 맞춰 화려한 색감의 꽃들과 장미로 구성되어 있어 예뻤다.



어떻게 하면 정원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었다.

먼저 멀리서 각 정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어보며 감상했다. 

그다음엔 질문을 하며 감상했다. 왜 이곳에 이 조형물을 놓았는지, 혹은 왜 이 꽃을 놓았는지, 왜 이 색감을 가장 많이 썼는지 정원사분의 의도를 고민하며 감상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디테일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 집중하며 바라봤다.  


개인적으로 정원의 한 부분 중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작은 꽃 한 송이와 좀 더 큰 잎을 가진 한 송이, 그리고 다발로 퍼지듯 보이는 꽃들을 보면서 꽃이 폭죽같이 터지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정말 큰 꽃 미술관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약 한 달 정도 진행됐던 특별전인 코리안가든쇼를 엄마와 함께 보고, 동생과 나머지 모든 세계전통정원을 보고 나니 정말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앉아 있어도 괜찮을 곳이 어디 없나 하고 동생과 걷는데 부모님이 넓은 길에 있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쉬고 계신 걸 봤다. 한참 쉬고 싶을 때 이렇게 긴 쉼터가 있다니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의자에 동생과 앉았는데 나무 의자가 시원하고 넓어 정말 편했다. 눈을 감고 쉬어볼까 했는데 너무 편해서 깜빡 잠이 들 뻔했다. 우리 넷 다 자면 깨워줄 사람이 없는데!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날은 더웠지만 그만큼 눈부신 햇살 아래 꽃과 나무들이 선명한 색을 하고 있어 즐거운 날이었다. 



순천만국가정원 

noki.and.no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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