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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시지프 신화

바위를 끝없이 굴리던 건 나였다

by 녹턴

별점: ★★★★

추천대상: 이방인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는 분,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

내용이 쉽지는 않아서 책과 친하지 않으신 분들껜 그리 추천을 드리지 않는다. 한 장만 읽고 바로 덮어버릴 수 있으니..


'시지프 신화'는, 영원히 산 밑에서 바위를 위로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이야기에서 따온 철학 에세이이다. 시지프는 산 위로 바위를 굴린다. 산 정상 위에 도착하면, 바위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시지프는 다시 바위를 올린다. 다시 떨어진다.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현대인이 하루 일과를 반복하는 모습같다. 시지프는 우리로 빗댈 수 있고, 바위가 올라가고 다시 떨어지는 건 부조리에 빗댈 수 있다.


156p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벌려는 것인데 인생의 모든 노력과 최상의 몫이 이 돈벌이에만 집중되어 버린다. 행복은 잊히고 수단이 목적으로 변한다.

현대인의 모습을 두 문장으로 정리했다. 우리는 밑도 끝도 없이 바위를 굴려가고 있다.


우선 내가 느꼈던 세상의 부조리를 말해보려고 한다. 내가 부조리를 강하게 느낀 건, 얼마 되지 않은 재작년이었다. 나의 입시생활은 어떻게 보면 '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다르게 보면 자본주의라는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이었어야 할 체제의 부조리를 느낀 인생의 순간이다. 라디오헤드의 앨범을 들은 것도 이 부조리의 영향이 크다. 나는 비판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에 빠졌고, 현실에서의 삶에 '일시정지'를 단행했다. 사람들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열심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자조하고, 그 사람처럼 되려고 한다. 왜? 라고 묻는다면 난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생각보다 '노력'은 굉장히 불친절하고, 추상적이며, 모순적이다. 정량이 불가하다. 노력의 이면에는 엄청나게 큰 백그라운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모든 것이든 무료로 줄 것 같은 이벤트에 조그마한 글씨로 별의별 조건들이 쓰여져 있듯이, 그들의 성공은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 환경과 결과는 정비례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거쳐온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입시만 '잘' 치루면 만족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경주에 몸을 던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 목적지 너머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라고 묻고 싶다. 목적 없는 질주는 허무에 도달한다. 나도 공부를 하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었지? 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책을 접하면서, 부조리를 대하는 나의 태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재조정하고 있다. '바람직함'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88p
내일을 생각하고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이것보다 저것을 선호하는 이런 모든 것은, 비록 그 자유가 실감되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도, 그것은 역시 자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조리와 맞닥뜨린 이 순간, 그 대단한 자유, 어떤 진리를 성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토대인 그 존재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죽음이 여기, 유일한 현실로서 버티고 있다. 죽음 다음에는 내기는 이미 끝난 것이다. 나 역시 이제 더 이상 영원히 생명을 이어 갈 자유가 없는 노예일 뿐이다. 그런데 혁명도 경멸도 없이 계속 노예로만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영원의 보장도 없이 충만한 의미의 자유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부조리를 맞닥뜨린 순간, 이제까지의 나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정말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시지프 신화는 이렇게 '부조리'를 느끼고 있는 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부조리를 어떻게 자각하는지부터, 부조리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준다. 나는 내가 삶의 진리를 모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부조리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상,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인 이상. 부조리를 회피하며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세상에 불확실한게 너무나 많지만, 내가 지금 부조리를 인식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부조리에 어떤 형식으로든 반항하고, 부조리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며,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걸어가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림자가 있다는 건 햇빛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운명대로 돌을 올렸다 내리는 시지프여도, 삶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144p
중요한 것은 부조리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것, 그것이 주는 교훈을 인정하고 그것의 살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조리한 즐거움의 전형은 바로 창조다. "예술, 오로지 예술.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 있기에 진리로 인하여 죽지 않을 수 있다."라고 니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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