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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에로스의 종말

지금 우리에게 순수한 사랑은 존재할까?

by 녹턴

별점: 4.0

추천 대상: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궁금한 사람 / 현대의 연애 문화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



왜 현대사회에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현대인의 집단적 특성을 논거로 들며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설명한다.

우선 몇 가지 용어들을 정의하고,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에로스’는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나르시시즘은 관심의 대상이 오직 ‘나’에게만 집중된 상태이다. 자기를 발전시키려는, 자기애가 필요 이상으로 커서 타자를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태이다. 다음으로 중세~근대 사회는 규율사회, 현대사회는 성과사회로 생각될 수 있다. 규율사회란 봉건제 하에서 위 계급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사회를, 성과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성과를 내면 되는 사회이다.


20p
우울증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이다. (중략)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는 무엇보다도 성공을 겨냥한다. 그에게 성공은 타자를 통한 자기 확인을 가져다준다. 이때 타자는 타자성을 빼앗긴 채 주체의 에고를 확인해 주는 거울로 전락한다. 이러한 인정의 논리는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를 자신의 에고 속에 더 깊이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성공 우울증이 발생한다.


현대사회에서 에로스가 사라진 건 성과사회, 나르시시즘으로 생겨난 타자의 부재 때문이다. 성과사회에서는 ‘할 수 있다’를 모토로 인간이 움직인다. 이전의 규율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얼마만큼 해야 했다면, 이젠 그 제한이 사라졌다. 사회는 내가 벌고 싶은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처럼 그려진다. 동기부여, 자발성, 자기 발전적 프로젝트는 남의 채찍보다 훨씬 유용한 착취 수단이다. 그래서 개인은 그 체제 안에서 굴려질 수밖에 없다. 정해진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은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무한한 발전을 기대하고, 자신의 가치가 증명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개인이 자기 자신에 탐닉할 동안, 타자에 대한 이해의 기회는 사라진다. 이는 책에서 ‘성공 우울증’이라는, 참 신기한 용어로 표현된다. 성공하려면 자신의 가치를 알려야 하기에, 자신의 에고를 키우고 남에게 자신의 성과를 알리려 한다. 소통은 사라지고 일방향의 선전만 남는다. 자신으로의 고립은 자연스레 우울을 낳는다. 이런 과정에서 ‘타자성’을 이해하고, 이를 욕망하는 에로스가 사라졌다. 오직 관능과 욕구, 성애만 남은 셈이다.


41p~42p
오늘날 사랑은 긍정화되고 그 결과 성과주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성애(Sexualität)로 변질된다. 섹시함은 증식되어야 하는 자본이다. 전시가치를 지닌 신체는 상품과 다를 것이 없다. 타자는 성애화되어 흥분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이질성이 제거된 타자를 사랑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소비할 뿐이다. 그러한 타자는 성적인 부분 대상들로 파편화되기에 더 이상 하나의 인격성을 지니지도 못한다.


사실 이 현상은 사회의 빠른 발전을 가져온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계발과 사회 혁신에 뛰어들게끔 만들어진 성과사회이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사회가 무조건 타락하거나 불건강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사회는 훨씬 우울에 빠지기 쉽게 바뀌었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약 87만 명이었던 우울증 환자 수가 2023년에는 약 109만 명으로 25% 증가했다고 한다. 높은 우울증 발병룰과 자살률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하루아침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문제이다. 이런 실정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왜 우리가 이리 우울한지 객관적으로 알고, 연대와 소통을 이어가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책에는 현대사회에서 에로스의 종말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다. 꾸준히 문제가 되어왔던 성 상품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고찰도 읽어볼 수 있다. 분량이 짧은 책이지만,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꾼 무거운 주제들이 담겨 있다.

성과사회에 놓여 있는 개인으로서 가끔 내 가치를 어떻게 높여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학점을 높이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고민은 살아감에 있어 필요하지만, 과도한 걱정은 마음에 좋지 않다. 나에겐 그 어느 것으로도 평가받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사랑을 불러 모으는 첫 번째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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