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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남주 Oct 01. 2024

도련님

나를 돌아보는 독서 기록 18일차

9월 30일 월요일

오전 5시 52분


9월의 마지막 날이다.

퐁당 퐁당 공휴일이 있는 한 주의 첫날이기도 하다.

10.1.화 국군의날 임시공휴일

10.3.목 개천절 공휴일


알찬 주말을 보내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이라 좋다.

더 좋은 건, 지금 '내 책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 친정에 가서 부모님께서 사용하지 않는 접이식 책상을 가지고 왔다.

이제는 메뚜기처럼 책과 노트북을 들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내 책상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독서모임의 멤버 석진님께서 재미있다고 추천해 주신 책이다.

작가는 1867년에 태어나 1916년 49세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도서관에 청소년을 위한 <도련님>과 초등학생을 위한 <도련님>도 있어서 같이 빌려왔다.

두 딸들과 함께 첫 문장부터 돌아가며 읽었다.


번역이 아주 조금씩 달랐다.

첫 문장 들이다.

(어른용)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_현암사

(중학생용) 타고난 말썽꾸러기 기질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온갖 말썽을 다 부리고 다녔다._신원문화사

(초등학생용)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말썽쟁이였다. 성격이 단순하고 급해서 못난 짓도 많이 저질렀다_미래 아이세움


그리고 어른 책의 표현이 더 강했다

(초등학생용)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로 엄지손가락을 그었다.

(중학생용) 그까짓 손가락 하나쯤 하고 나는 오른손 엄지손가락등을 비스듬히 그었다.

(어른용) 나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등을 칼로 비스듬히 깊이 벴다.


하나만 더 비교 문장을 가져와 본다.

(어른용)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골동품이 괴롭힌다.

(중학생용)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골동품으로 내 숨통을 조여 대는 주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용)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집주인은 골동품으로 내 숨통을 한 번 더 조였다.


1장의 앞부분만 비교하며 같이 읽고, 뒤로는 각자의 속도로 읽기로 했다.

읽으면서 사이사이에

"주인공이 선생님 됐어?" "응"

"기요 할머니 웃기네"

"엄마, 너구리, 빨간 셔츠 나왔어?" "아니 아직"

"하숙집 나오는데 읽고 있어" 등등의 말이 오갔다.

똑같은 책을 같이 읽으니 이런 재미가 있다.

마치 영화나 TV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이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돈을 벌기 위해 선생님이 된다.

선생님의 어려움이 드러나는 부분은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다. 즉, 학군이다.

그래서 길을 걷거나 도서관이나 마트 등에 가면, 불쑥불쑥 예기치 않게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상황을 겪는 주인공의 어려움과 난처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시간 부자로 아침을 시작하니 행복하다.


이번주도 화이팅!!

내일이 10월이라니~~~


오늘도 무사히...^^



 


오후 8시 19분

내일은 '국군의 날'로 임시 공휴일이다.

퐁당 퐁당

하루 출근하고 하루 쉬고 하루 출근하고 하루 쉬고..

월요일이지만 월요일 같지 않은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 같다.


오늘은 퇴근 후, 모든 걸 내려두고 청소기부터 돌렸다.

청소기를 안 돌린 지 일주일이 훨씬 넘은지라, 집이 엄청 더러웠다.

휴일을 맞아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도서관 책이 하루 연체되어 반납하고 왔다.

연체된 책이 있으면 반납을 한 후에 연체 기록을 지워주는 '연체 지우개' 이벤트 중이다.

9월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이벤트이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나처럼 책을 자주 빌리고 반납하는 사람에게 '연체 지우개'는 매우 감사한 이벤트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인생의 한 순간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울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언제를 지우고 싶은가?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은 다 소중하니깐 지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순간들이 나를 깨닫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고 믿고 있기에 지우고 싶은 순간은 없어'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새롭고, 낯선 관점에서 내 인생을 바라본다면

그래서 반드시 지우고 싶은 순간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몇 가지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다 쓰기에는 매우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일들이 될 것 같기에

딱 한 가지만 골라본다면,

바로  한강 선상파티에서 비올라를 깡깡 거리며 축하 연주를 했던 순간이다.


좀 더 자세히 풀면 이렇다.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과 친구가 아는 여자 선배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그 선배는 결혼 전에 약혼식 분위기의 피로연을 하는데, 한쪽에서 잔잔하게 연주를 할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과 친구는 본인을 포함하여 나, 나의 베스트 프렌드 세 명 그리고 두 명을 더 영입(?)해서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가 있는 현악4중주 팀을 만들었다. 악기 종류와 수가 맞아 현악 4중주 팀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스즈끼 1,2권 수준의 완전 초짜였다.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악기를 꼭 한 개를 해야한다고 해서 비올라를 한 상태였다. 진짜 낑낑 깽깽 거리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위아래 검정색 옷으로 맞춰 입고, 한강 선상카페 갔고, 진짜 연주를 했다.

우리에게 요구된 것은 아마도 분위기 있는 선상 파티의 아름다운 선율의 백그라운 음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연주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 수준의 곡들이었다.

불안정한 음정들, 삑사리 나는 소리.

계이름이 틀릴까 봐, 손가락이 틀릴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는지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고,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친구는 우리를 무슨 생각으로 불러 모았을까? 미리 연습이라도 믾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연습도 거의 못 했다고 해야 맞다. 친구들과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얘기할 때마다 미스테리 한 가득이다. 과 친구는 도대체 왜 우리를 불렀을까? 우리는 무슨 용기로 승낙을 했던가?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연주를 했던가? 그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좋게 말해 순수한 영혼들이었다. 마지막에 악기를 정리하고 보면대랑 악보를 챙기면서 멋쩍게 웃으며 "우리 연습 좀 할걸..." 이 말만 반복했다.


다음은 기억나는 파티의 몇 장면들이다.

나는 진짜 기억이 거의 안 난다.

대부분 내 친구들이 기억하는 사실들, 장면들이다.


-연주곡 중 하나는 브람스의 왈츠였다.

-멋진 턱시도를 입은 신랑과 비단결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춤을 췄다.

-겉은 하얗고 속은 초콜렛인 케이크를 먹었다.

-본식이 끝나고 랍스타가 있는 정찬을 먹었다.

-친구 앞에는 긴 곱슬 머리에 수염을 기른 신랑 친구가 앉아 있었다.

-화장실에서 마주 친 여자 분은 아주 세련된 검정 정장을 입고 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분위기의 사람들이었다.)

-몇몇의 아주머니 분들이(아마도 친척분들이셨겠지) 이번 곡은 틀렸다며 폭풍 칭찬을 해 주셨다.

-그 신부인 선배는 나중에 우리를 따로 불러 또 밥을 사 주었다.


그 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좋게 말해 순수한 영혼들이었다.

고등학생, 중학생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며 초등학생 수준의 연주 실력을 지녔던 현악4중주.

그 때 우리를 본 사람들은 우리의 연주 실럭에 대해 차마 나쁜 소리를 못 했을거다.

너무 해맑았기에.


그저 미안할 뿐이다!

뜬금없지만, 그 때 그 신랑 신부가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ㅋㅋ


오늘은 글을 쓰다 옛 추억을 하나 소환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쓸게 생기고

쓰다보면 계속 길어지는 놀라운 경험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두 딸들과 함께 읽는 <도련님>



*오늘의 영감 문장 :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무관심과 냉소는 지성의 표시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한 징후이다. _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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