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 미라클 글쓰기 챌린지 10기 5일차
내가 살아보지 않고서는 절대 그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 삶 중 하나가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아닐까 싶다.
한강 작가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어릴 적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갔던 희랍어 강사 '그'가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때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 마침내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오랫동안 익혀 이젠 내 것이나 다름없어진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를 빠져나왔지요. 누군가와 몸이 가까워질 때마다 실례합니다, 라고 독일어로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싶었어요. 입국장을 빠져나온 순간 깨달았어요. 가족이며 친구들을 마중 나온 한국 사람들의 사이를, 어깨를 헤치며 나가가면서...... 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겐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없었어요. 그 사실이 왜 그때, 그토록 뼈저린 고독감을 나에게 안겨주었는지.
성인이 된 후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재미교포 1세,
성인이 되기 전 이민온 사람들은 재미교포 1.5세,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재미교포 2세라 부른다.
교포 2세는 사실상 미국인이다.
외모는 낯설지 않을지라도 그 속은 한국인의 잣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단 될 미국인이다.
'교포 2세'
문득 엄청 옛날말처럼 들린다.
지금은 Korean American 이 나에게 더 익숙하다.
여기 Korean American인 두 작가가 있다.
린다 수 박(Linda Sue Park)과 태 켈러(Tae Keller)와 이다.
이 두 작가는 Korean American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뉴베리상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린다 수 박은 <사금파리 한 조각 / A Single Shard>로 2002년 뉴베리상을,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When You Trap A TIger>로 2021년 뉴베리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사금파리 한 조각> 책 머리글의 한 부분이다.
나의 부모님 박응원과 김정숙은 대학 공부를 하러 19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학교를 마치고 일리노이 주로 이사한 이후 1960년에 내가 태어났다. 그 뒤로 나는 시카고 근교에서 자랐다.
당시 그 지역엔 한국인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부모님은 우리 삼남매가 영어에 얼른 능숙해져서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집에서 영어만 쓰도록 했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명절을 지내면서, 한국의 전통과 가치 기준을 계속 유지해 나갔지만 나는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고 부모님도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얘기가 없었다.
내가 내 아이들을 갖게 되어서야 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많은 걸 들려 줄 능력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을 새로 알게 되었고, 다른 미국인들도 이를 알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한국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업은 엄청난 경험이었으며, 부모님들을 한층 가깝게 대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관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고, 두 분은 나의 많은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
다음은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작가 태 켈러 인터뷰 내용을 담은 기사의 일부이다.
비빔밥, 냉면, 찌개 등 한식을 먹으며 자라온 켈러는 어릴 적 잠자기 전 침대에서 한국인인 외할머니에게서 들었던 호랑이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책을 썼다.
“할머니는 제가 어릴 때 호랑이, 개구리, 토끼, 구미호가 등장하는 한국 전래동화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특히 저는 ‘해님 달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지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호랑이가 문을 발톱으로 쓱쓱 긁으며 서성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마법 같았지요.”
켈러는 이 책을 처음 구상해서 원고를 마무리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퇴고는 20차례나 했다.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서 공부한 위안부 문제 같은 한국 역사와 외할머니가 들려준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글에 녹였다. *출처 : 어린이동아(https://kids.donga.com)
태 켈러는 자신의 4분의 1이 한국인이라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태 켈러의 어머니는 소설 '종군위안부'(Comfort Woman)와 '여우 소녀' 등을 쓴 한국계 미국 작가 노라 옥자 켈러. 옥자 켈러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 살 때까지 서울에 살다가 하와이로 이주, 미국인 남성과 결혼해 태 켈러를 낳았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은 한국의 호랑이와 강인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이고, <사금파리 한 조각>은 12세기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도공이 되고 싶은 고아 소년 '목이'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말을 못 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영어로 썼다. 이 소설들이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을 받았다니... 약간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 봄, 원서읽기 모임에서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When You Trap A TIger>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다음주부터 읽기로 한 <사금파리 한 조각 / A Single Shard>에 대한 기대도 매우 크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외모는 한국인이 아니지만 한국말 밖에 못하는 한국인, 혼혈아 모델로 유명한 '한현민'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나이지리아계 한국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트레버 노아'도 생각난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과 흑인의 결혼 및 관계를 법적으로 금지했던 시대에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거 자체가 범죄의 결과다.
린다 수 박, 태 켈러, 한현민, 트레버 노아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정체성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지극히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에너지를 본받고 싶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