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처음'은 의미 있지 않을까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겪는 순간에는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아야지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처럼 “가장”이 들어 있는 질문에 대답하는 게 매우 어렵다. “가장”은 빼고 내게 의미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 일생일대 첫 고민
초등학교 때, 아빠가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시면서 내 선물로 손목시계를 사 오셨다. 그런데 나는 그 귀한 손목시계를 처음 가지고 학교에 가는 잃어버렸다. 왜 손목에 차지 않았는지 기억은 없지만, 내 생각에는 등굣길에 떨어뜨린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걸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떨어진 시계를 찾았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지각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하루종일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시계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교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하굣길에 시계는 없었다. ‘비싼 새 손목시계를 찾아야 하는데...’와 ‘학교에 지각하면 안 되는데...’ 이 둘 사이에서 엄청 고민했다. 나는 다리는 학교를 향해 걸으면서도 몸은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키 작은 초등학생 여자아이였다. 그때의 그 고민의 순간은 나중에 커 가면서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매우 의미 있는 큰 사건이다.
++ 일생일대 첫 부탁(요구)
수능 보던 날. 내 자리는 칠판과 딱 붙은 맨 앞자리였다. 감독하시는 선생님은 지루하신지 내 자리 바로 옆 교탁에 기대어 계속 몸을 앞뒤로 움직이셨다. 나는 시험 보는데 방해된다고 말씀드렸다. 감독관은 바로 멈추셨다. 그때의 내 말투나 얼굴 표정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은 안 나지만,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일 없는, 선생님 말씀은 다 맞다고 생각했던 teacher’s pet 같았던 모범생인 내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 일생일대 첫 만남
대학 동기이자 베스트 프렌드가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다. 먼저 결혼한 그 친구는 남편의 직장 동료를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2006년 5월 27일 토요일 대학로. 나는 그를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난 저 남자와 결혼할 거 같다.’라는 운명적 느낌.
‘결혼하고 싶다’도 아니고 ‘나랑 잘 맞을까?’도 아니고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먼저였어야 했는데 말이다.
++ 일생일대 첫 선물
2008년 6월 17일 우주는 나에게 첫 번째 선물을 주었다. 첫째를 낳던 순간, 출산의 고통은 이제 기억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갓 내 몸에서 나온 존재가 내 팔에 올려졌던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다. 온 우주가 내 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지. 이런 순간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 인생의 어느 순간도 의미 없는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의미를 주면 없던 의미도 생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