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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더 Oct 15. 2019

블록체인은 왜 다 실패할까?

경제 설계라는 것은 탑 다운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

토큰 경제의 종말.


1900년대 중반, 경제인의 시대는 끝났다며 새로운 시대가 나타나야 함을 강조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였다. 드러커에 따르면 경제인의 사회는 아담 스미스와 아담 스미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등장함에 따라서 출범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경제인이란 매우 현명하지만, 도덕적인 판단은 내리지 않으며 오직 자신에게 최대의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행동만 원하고 그 방법도 알고 있는 인간의 유형을 말한다. 


물론 이들의 전제는 틀렸다. 인간은 현명하지도 않았지만, 이익만을 따라서 철저하게 행동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그 과정속에서 큰 피해가 생겨났다. 국가가 막대한 이득을 얻기 위해서 약소국가들을 식민지화시켰고, 이는 곧 세계 1차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세계적인 규모의 경제 공황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성적이고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행동했던 인간들은 절망에 빠지고 자신들의 의지할 수 있는 초인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아돌프 히틀러와 무솔리니였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들이 단기적으로 사회에 이득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점점 더 많은 자본을 독점하려는 욕심들이 모여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야기했고, 사람들은 결국 정부 기관에 대한 의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존도가 극대화되어 히틀러와 무솔리니라는 전체주의 리더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블록체인은 경제적인 인센티브뿐이다.


사실 블록체인도 그렇지 않나. 블록체인 경제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류는, 토큰 리워드라는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참여자들이 올바른 행위들을 할 것이라는데 있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참이라고 한다면, 아돌프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나오지 않았어야 했다. 이미 경제인의 시대는 1930년대에 종말하였다. 인간은 단순히 경제적 동기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경제적 동기로 움직인다고 하여도 그 결과가 비참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경제적인 동기로만 행위를 유도하기 때문에 그 인센티브를 악용하려 드는 행위자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질적으로 경제적 인센티브만을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수많은 블록체인이 이와 같은 오류를 겪고 있고 블록체인이 가지는 분산성에 열광하던 사람들조차 중앙화되어있는 서버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물론 블록체인이 가지는 문제가 경제적 인센티브의 오류에만 있겠느냐마는 필자의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나머지의 문제들은 이를 따라온다고 보고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했고, 그 목적은 행복이라 정의했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사실 경제적인 웰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닐 때가 많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의리, 사랑, 우정, 그리고 공인으로써의 명예, 공동체의식 등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결국 경제인은 인간의 많은 부분 중에 한 부분을 부각시킨 것일 뿐 인간에 있어서 동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정말로 많다.


그래서 토큰 경제라는 말이 사실 완전무결한 듯 보여도 허점투성이다. 토큰 경제를 인간이 설계하고 여기서 모든 행위자가 올바른 행위를 할 것이라는 말은, 법을 만들면 모든 사람이 준법정신을 가지고 법을 준수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올바른 행위를 할 것이라는 말과 같다. 법을 발의한다고 해서 범죄가 완전히 방지되는 것이 아니듯, 어떠한 법칙과 룰을 정하더라도 악의적인 행위자가 나올 수 없다는 가정을 애초에 하면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며,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역사가 이미 증명한 바 있지만 사람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렇기에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블록체인 필드에서도 인간들은 반복되는 역사를 다시 또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바텀 업(BOTTOM -> UP) 방식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필자도 토큰 경제 모델 설계를 한다는 명분으로 회사에 들어가고 월급을 받고 있지만, 애초에 경제 설계라는 것은 탑 다운(위에서 모든 것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없다. 무조건 바텀 업(아래에서 위로 설계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이것은 자생적이고 자발적이다. 비트코인의 수요처는 누가 만들었나? 나카모토가 스타벅스 회장이랑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MOU를 맺어서 스타벅스가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잖나. 제대로 된 토큰경제는 어쩌면 기능하는 블록체인에 대한 자발적 수요와 사용에서 나올 것이다.


많은 프로젝트가 블록체인을 만들고 직접 관리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이는 인간이 유토피아를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블록체인 업계가 필요한 것은 토마스 무어가 아니다, 기능하는 블록체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프로토콜 위에서 서비스를 구현하는 유저들이 필요하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noder.foundation/token-economy-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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