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홍보는 거품을 불어나게 할 뿐이다.
비트코인 붐이 일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 지 2년여가 흘렀다. 그동안 블록체인 기업들의 기술력은 분명 성장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이미지는 ‘암호화폐 거품’을 벗어났을까. 블록체인 관련 기사에는 여전히 유시민 전 장관의 비트코인 비판 발언이 댓글로 달린다. 유 전 장관이 JTBC 뉴스룸 토론에 출연한 지 1년 9개월이 지났음에도,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거품’, ‘사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블록체인이 여전히 거품 취급을 받는 데에는 블록체인 기업들의 홍보 방식도 영향을 끼쳤다. 필자가 매일 아침 받는 여러 개의 보도자료엔 납득하기 힘든 거품이 있다. 블록체인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자료가 ‘블록체인 거품’ 현상을 부추긴 아이러니가 생긴 것.
단적인 예가 리버스 ICO 프로젝트다. 리버스 ICO 프로젝트들의 보도자료에는 꼭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기존 서비스의 유저베이스를 기반으로~’, ‘유저베이스 몇만 명’ 같은 문구다.
국내 리버스 ICO 프로젝트 중엔 기존 서비스에서 상당한 이용자 수를 확보한 프로젝트들이 있다. 싸이월드의 클링, 판도라TV의 무비블록 등이 대표적이다. 싸이월드는 한때 월 이용자 수가 2,000만 명을 넘어섰던 한국의 대표적인 SNS였다. 판도라 TV의 동영상 플레이어인 KM 플레이어는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8억 건에 달하는 원조 동영상 스트리밍 강자다. 이 두 서비스의 공통점은 ‘한 때’ 잘 나갔다는 사실이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판도라TV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밀리는 등 두 서비스 모두 새로운 강자 앞에서 좌절했고 수년째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들이지 못했다.
이 같은 서비스들이 문제 해결 방법으로 택한 게 토큰이코노미다. 그런데 이 토큰이코노미를 홍보할 때는 기존 이용자 수를 기반으로 블록체인의 ‘매스 어댑션’을 창출하겠다고 한다. 이용자 수가 없어서 혹은 더 이상 늘지 않아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인데, 기존 이용자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장하겠다니? 모순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모순이 반영된 것일까. 싸이월드의 클링은 토큰이코노미로도 이용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좌초된 상황이다.
또 다른 예로는 ‘MOU’, ‘전략적 파트너십’ 홍보가 있다. MOU 체결 보도자료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는 ‘~프로젝트의 암호화폐를 ~서비스(혹은 디앱)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문구다. 이런 문구는 해당 프로젝트가 사용처를 늘리고 있다는 뜻에서 등장하는데, 문제는 실사용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국내외 여러 개의 벤처캐피털(VC), 블록체인 엑셀러레이팅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VC나 엑셀러레이팅 기업이 신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을 컨설팅해주는 과정에서, 프로젝트들이 해당 스테이블코인으로 초기 자금 모집을 하도록 하는 게 파트너십의 핵심이다. 그러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대부분은 여전히 이더리움으로 초기 투자금을 유치한다. 해당 스테이블코인으로 초기 자금을 모집한 프로젝트는 거의 없었으며 VC와의 파트너십은 무의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쓰이지 않는 사용처일지라도 확보해두는 게 낫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의미한 사용처 확보를 대형 파트너십인 것처럼 홍보하다 보면 시장에는 더욱 거품이 낄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 시장에선 파트너십이 호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공시 사이트 ‘쟁글’의 주간 리포트만 봐도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공시는 대부분 ‘파트너십 체결’이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더 많이 홍보되어야 함은 사실이다. 그래야 블록체인이 거품 이미지를 벗을 수 있다. 그러나 뻥튀기에 불과한 유저베이스, 무의미한 파트너십 홍보는 거품을 불어나게 할 뿐 블록체인 이미지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블록체인 업계는 수년째 매스 어댑션을 소망한다. 대중이 블록체인 서비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홍보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앞으로는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거품 낀 홍보자료 대신 실제 기술에 기반을 둔 보도자료를 더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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