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블록체인은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인터넷 붐을 타고 우후죽순 실리콘밸리 혁신 서비스 기업들이 등장했을 때, 그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100원 정도 소모될 비용을 공짜로 줄여드려요”와 같은 편익이었다. 반면 블록체인 혁신 서비스 기업들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대개 “지금까지 공짜로 해주시던 일에 100원 정도를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편익이다.
숫자로 보면 같은 100원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동기 수준은 큰 차이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손실 회피에 편향되어 있다. “100원 벌 것을 못 버는 것”보다 “100원 잃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받으며, 누군가가 “100원 잃는 걸 안 잃게 해줄게” 하는 것이 “100원 더 벌게 해줄게” 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제안이라 느낀다.
그런 이유로 초창기 실리콘밸리 IT 회사들의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큰 각광을 받은 반면,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는 사람들의 감흥을 얻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 사업의 디테일로 들어가면 기존 중앙화된 기업 또한 각고의 노력으로 비용 감축을 달성해냈기에, 신생 블록체인 기업이 그만한 이익을 소비자에게 주기 어렵기도 하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2000년대 이후 경영 혁신이라고 불릴만한 폭발적인 조직학적 발전이 있었다. 이젠 그 누구도 과거의 제왕적 경영론으로 회사를 성공시킬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직 경영 시스템을 개발하여 실천하고 있다.
그중 소위 FAANG이라 불리우는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은 전 세계 기업 문화 중 가장 최첨단을 지향하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은 지난 세기 세계를 주름잡던 대기업이 몰락한 역사를 조망하며, 그들처럼 소멸되지 않기 위한 다방면의 실험적 조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이전엔 ‘작은 기업의 민첩함’으로 ‘큰 기업의 약점’을 파고드는 성공이 가능했다면, 이젠 ‘큰 기업이 작은 기업 못지않은 민첩함’으로 (거기에 거대 자본의 뒷배경까지 힘입어) 거의 모든 시장의 가능성을 선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굳이 기술적 한계가 분명한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이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는 저 FAANG 기업들에 의해 더 빨리 캐치 되고, 더 영리하게 장악됨으로써 새로운 실리콘밸리 기업이 탄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러할진대 가입 따로, 포인트(코인) 구매 따로, 사용자 등록 따로, 서비스 제공지가 따로국밥인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가 발 디딜 틈이 있을까? 그나마 스팀잇이 계좌 개설과 가입, 서비스 이용과 거래가 한 군데서 이루어지는 방식을 취했기에 지금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스팀잇이 등장하기 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서비스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동시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스팀잇에 열광하여, 페이스북 등의 성공에 못지않은 초거대 서비스로 등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사람들은 “100원 잃는 것을 안 잃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미 페이스북에 둥지 튼 수많은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굳이 해체해가며 스팀잇으로 옮기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스팀잇 인터페이스의 불편함, 통일되지 않은 부가 서비스들, ‘경제 생태계’를 표방했기에 취해진 뉴비들에 대한 장벽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페이스북 등들의 편의를 포기하면서까지 스팀잇을 하게끔 이끌지는 못한다.
블록체인이 내세우는 사회 혁신의 개념 중 하나는 ‘미들맨의 소멸’이다. 중간 거래자를 없애 공급-소비 사이의 비용을 절감시키면 그것이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아이디어이다.
허나 꽤 많은 ‘미들맨의 소멸’을 들고나온 블록체인 서비스 기업들이 미들맨의 단점만을 지적할 뿐이다. 미들맨이 왜 필요했는지를 기술하고 그 장점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것인지를 언급한 경우를 단 하나도 보질 못했다.
큰 개념에서 보면 ‘미들맨’은 일종의 ‘신뢰의 대행’과 ‘실패의 리스크 헷지’를 겸하는 존재이다. 정말로 그 공급자(소비자)가 자신이 주장(약속)한 대로 행동을 취하는지 점검하고, 행여 불가항력으로 누군가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성공을 통해 실패를 희석시키는 보험의 성격을 겸한다.
그런 미들맨을 소멸시켰을 때, 어떻게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를 담보할 것이며 실패의 리스크를 어떤 방식으로 헷지시킬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 블록체인 서비스는, 극소수의 참여자만 존재하는 선물옵션 시장 정도의(아마 그보다도 못한) 사이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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