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근로감독관의 사건 일지 1

K 돼지국밥

by 박감

* 일러두기 : 인물들의 성명, 성별, 업종, 상호 등은 변경하였습니다. 혹시 내 사건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입니다.


근로감독관으로서 첫 사건을 맡았을 때, 머릿속은 이미 엉망이었다. 신규감독관 교육에서 ‘조사는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라고 배웠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신분증, 주시겠습니까?”


긴장을 숨기려고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근로자가 내민 주민등록증은 그야말로 고속 진동 모드. 그가 들고 있는 신분증을 자칫 놓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손을 벌벌 떠는 모습에, 오히려 내 긴장이 풀렸다. ‘그래, 둘 다 초보라 생각하자. 나도 첫 사건, 이 사람도 첫 신고.’


“급여는 얼마 받으셨죠?”

“월 198만 원입니다.”


초면에 급여부터 묻는 건 좀 그렇지만, 근로감독관은 이런 질문부터 시작한다. 결국, 체불 금액이 얼마냐가 핵심이니까.


“처음엔 K 돼지국밥 해운대점에서 일했습니다. 홀 서빙과 주차 관리를 맡았어요. 그러다 사장님이 사모님 명의로 대연동에 대연점도 열었는데, 그때부터 두 가게를 오가며 일했어요. 그러다가 원래 일하던 해운대점은 결국 폐업하고, 그 후로는 대연점에서만 일했죠. 둘 다 사장님이 운영했으니까 같은 사업장이에요.”


근로자는 해운대점에서 8개월, 대연점에서 10개월 일했지만, 자신이 같은 사업장에서 총 1년 반 동안 연속 근무했으니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업주는 딱 잘라 말했다.


“해운대점은 제 가게였고, 대연점은 제 아내 가게입니다. 서로 완전히 다른 사업장이에요. 저는 이 사람이 근무할 때는 대연점 운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면서, 그는 두 손을 써가며 분리된 두 식당을 열심히 설명했다. 두 사업장이 얼마나 다른지 강조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로자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직원 숙소가 있었어요. 사장님이 직접 차량으로 출퇴근을 시켜주기도 했고요. 대연점에서도 사장님은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계산대 뒤편의 작은 방에서 누워 쉬었습니다. 종종 사장님이 오지 않는 날도 사장님이 CCTV로 직원들의 근무 상황을 관리했고요. 사모님은 단순히 반찬을 사서 채워 넣는 일을 도와줬을 뿐이고, 직원 관리나 사업장 운영은 사장님이 대부분 했어요.”


말을 마친 근로자의 손이 무릎 위에서 다시 떨리고 있었다. 이내 사업주가 반박했다.


“제가 몇 번 출퇴근을 시켜준 건 맞지만, CCTV로 감시했다는 건 완전 허구입니다. 저는 대연점 운영에 관여한 적이 없어요. 이 사람은 대연점에서도 퇴직한 지 1년이나 지났는데,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퇴직금을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당시의 CCTV는 남아있지 않았고, 사업주가 최근에는 아내 사업을 돕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그러자 근로자는 조용히 통장을 꺼내 들었다.


“여기, 대연점 근무 당시 급여 통장입니다. 사모님 명의로 들어올 때도 있었지만, 사장님 명의로도 여러 번 들어왔습니다.”


사업주가 순간 움찔했다. 통장 내역을 확인해 보니, 급여가 번갈아 가며 두 부부의 이름으로 입금된 기록이 있었다. 두 식당은 재정적으로 분리되거나 독립된 사업장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고용보험 내역을 조회하니, 기존 식당 직원 중 절반 정도가 새 식당에 이동하여 근무하였다. 이동 전·후 직원들의 급여액은 완전히 같았고 급여 지급 일자는 단 하루도 차이 없이 다음 달 같은 날짜에 지급되었다. 근무 기간의 단절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내게는 영원 같던 두 시간이 흘러, 조사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었다. 근로자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었지만, 사업주는 반대 증거를 잘 내놓지 못했다. 내가 사업주에게 말했다.


“오늘 진술 내용과 제출 자료들을 검토해서, 결과를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시정지시를 하면, 지급할 의사는 있으신 건가요?”

“노동청에서 주라고 하면 줘야죠, 뭐.”


다행이다. 그제야 나도 마음이 살짝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올라가던 입꼬리를 슬며시 내렸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조서에 이름을 쓰고 서명을 했다. 근로자는 이름을 한글이 아닌 한자로, 꽤 시간을 들여 썼다. 글씨체는 자연스럽지도, 그리 멋있지도 않았다.

사실, 그 이후 5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에, 중국인 외에 이름을 한자로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복잡한 획을 그으며 이름을 쓰는 모습이 아마도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날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당신이 시키는 대로 일했지만, 나는 당신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법에 정한 정당한 대가를 주는 게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에요.’


첫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그날의 그의 표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 대질 조사

신고인과 피신고인을 동석시켜, 함께 진술을 받는 조사 방식이다. 양 당사자의 진술이 일치한다면 대질 조사는 필요 없다. 하지만, 양쪽이 주장하는 금액이 조금이라도 다른 경우, 다른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금액 확정을 위해 대질 조사는 꼭 필요하다. 체불 금액이 확정되지 않으면, 처벌이든 합의든 이후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 신고한 근로자로서는 사업주를 마주해서 진술하기가 끔찍하겠지만, 사업주가 부인할 것이 걱정된다면 처음부터 대질 조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낫다. 각자 출석한 뒤 진술이 불일치하면 결국 다시 대질해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건 처리 시간이 많이 지연되고 양쪽의 감정 소모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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